10일 오전 10시 2분. 경기 광명소방서 구급대원들은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70대 여성의 신고를 받고 긴급 출동했다. 지령이 떨어진 뒤 구급차가 출발하기까진 9초가 걸렸다. 운전석에 앉은 이용 대원(33)은 소방서 앞 도로로 진입하기 위해 양보를 구하는 손짓을 했다. 하지만 차량들은 경적소리를 내며 돌진해왔다. 도로에 들어선 건 21초 뒤였다.
몸이 둔한 구급차는 수시로 앞자리를 내줬다. 적재량 1t 트럭을 각종 응급장비를 갖춘 탑차로 개조해 구급차의 무게는 3t 정도. 배보다 배꼽이 크다보니 속도가 안 붙어 앞차와 간격이 자꾸 벌어졌다. 사이렌이 쉼 없이 울렸지만 주변 차량들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이 대원은 “차들이 갑자기 끼어들어 급정거를 하면 환자가 다칠 수 있다”고 했다. 선진국에선 구급차에 대한 일반 운전자의 양보를 강제하고 있지만 우리는 권고사항이다.
구급차 뒤쪽은 얌체 운전자로 붐볐다. 구급차가 가면 주변 차량들이 길을 내줄 것으로 생각하고 바짝 붙어 따라왔다. 하지만 기대만큼 ‘진도’가 안 나가자 주변 차로로 흩어졌다.
출발 6분 만에 도로에서 광명시장 주변 골목길로 들어섰다. 불법 주·정차된 차들이 늘어서 있어 한 대만 겨우 지나갈 수 있었다. ‘거북이 운전’으로 100여 m쯤 가자 맞은편에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섰다. 승용차가 후진을 했지만 주차된 차들과의 간격이 20cm 남짓해 애를 먹었다. 200m 되는 골목을 통과하는 데 5분이 걸렸다.
목적지까진 11분이 걸렸다. 신고한 환자는 다행히 안정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환자의 경우 4분 안에 응급조치를 하지 않으면 뇌손상이 시작된다. 동행한 방소은 응급구조사(30)는 “오전이라 상대적으로 덜 막힌 편”이라고 했다.
환자를 이송하고 복귀하는 길, 무전이 울렸다. 입술이 찢어진 어린이 환자였다. 급히 차를 돌려 현장에 가보니 환자와 그의 어머니가 골목에 나와 있었다. 대원들이 들것을 내린 뒤 상처를 봤다. 입 주변이 1cm 정도 베여 있었다. 아이는 걸어서 구급차에 탄 뒤 간단한 소독치료를 받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방 구조사는 “가벼운 열상이나 치아가 아파서 구급차를 부르는 분들이 많다”며 “보호자는 걱정이 되겠지만 그 사이 응급환자가 도움을 못 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충주대 응급구조학과 신동민 교수는 “대부분 선진국은 구급차를 유료로 운영하기 때문에 비응급 환자는 잘 타지 않는다”며 “일본의 경우 구급차가 무료지만 구급대원이 신고단계에서 비응급 환자를 가려낸다”고 말했다.
10일 하루 광명소방서의 구급차 출동은 38건. 이 중 호흡곤란 등 응급상황은 7건에 불과했다. 지난해 통계를 보면 119 구급대 이용자 중 비응급 환자는 64.7%에 달했다. 한 사람이 구급차를 ‘자가용’처럼 이용해 5년간 200여 회나 탄 사례도 있다.
이날 오후 11시 10분경 광명시청 앞에서 다리를 삐어 걸을 수가 없다는 50대 남자의 신고가 들어왔다. 현장에 가보니 그는 술 냄새를 풍기며 계단에 앉아 있었다. 그 취객은 “내 아들이 레지던트로 있다”며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까지 가자고 요구했다. 대원들은 너무 먼 거리라 일단 가까운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으라고 설득했지만 취객은 “너희들 그 병원에서 돈 받았느냐”며 항의했다.
할 수 없이 취객을 태운 구급차는 밤 12시가 넘어서야 서울대병원에 도착했다. 대원들은 취객을 부축해 응급실까지 안내하려 했으나 그는 “장례식장에 잠시 다녀올 테니 먼저 떠나라”며 자취를 감췄다. 심모 대원(36)은 “대학병원 근처에 사는 분들이 구급차를 불러 병원까지 온 뒤 은근슬쩍 귀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소방서로 복귀하는 동안 자해로 인한 두부 손상 등 2건의 신고가 접수됐지만 너무 멀리 나와 있어서 출동하지 못했다.
7월 16일 오전 3시 반경. A 씨는 경기 광명시 철산동에서 하혈을 하는 임신부를 태우고 서울 강남의 한 병원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서초역 사거리 통과 직전 신호가 바뀌자 A 씨는 정지선 앞에 섰다. 녹색신호였던 우측 4개 차로 중 2∼4차로에 있던 차들이 사이렌 소리를 듣고 멈추자 운전자들이 양보해준 것으로 판단하고 그대로 직진했다. 하지만 그 순간 1차로에서 질주하던 승용차가 교차로를 통과하던 구급차와 부딪혔다.
다행히 접촉사고의 충격은 크지 않았다. A 씨는 다친 곳이 없었고 상대 운전자는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임신부를 병원에 인계하고 온 지 두 달 만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사고 당시 임신 5개월째였던 임신부는 그 후 예정일보다 석 달이나 빨리 출산하다 쌍둥이 중 한 아이를 유산했다. 그 쌍둥이는 부부가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아 어렵게 얻은 아이였다.
시험관 아기 시술을 했던 임신부의 주치의는 “접촉사고가 유산에 영향을 미쳤다”는 소견을 냈고 그에 따라 A 씨는 형사처벌(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을 받게 됐다. 현행법상 구급차는 위급상황에 한해 교통신호 위반이 허용되지만 사고가 날 경우 일반인과 같은 기준으로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구급차는 신속 이송을 위해 환자를 인접 병원으로 옮기는 게 원칙이지만 이 사건의 경우 환자의 요구로 40∼50분 떨어진 곳으로 가던 중 일어났다.
충주대 응급구조학과 신동민 교수는 “구급은 행정인 동시에 서비스이기 때문에 구급대원이 민원인의 요구를 따르다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외국의 경우 교통위반으로 사고가 나더라도 면책 범위를 명시하고 있지만 우리는 관련 지침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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