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2시 41분. 집에서 잠을 자던 경기 이천소방서 유정상 안전지도팀장(48)은 ‘딩동’ 하는 휴대전화 소리에 눈을 떴다. 이 시간에 도착한 문자메시지는 99% 긴급 상황을 알리는 내용이다. 유 팀장은 머리맡에 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물류창고 화재 전 직원 비상소집’이라고 적혀 있었다. 유 팀장은 “메시지를 본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고 말했다.
유 팀장은 4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지난해 1월 이천시 호법면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 때 현장에 출동했다. 같은 해 12월 일어난 서이천물류센터 화재 현장도 지켰다. 이때는 8명이 숨졌다. 그는 “물류창고 화재는 규모도 크지만 인명 피해가 가장 걱정”이라며 “화재 현장으로 가는 내내 동료들 모두 초긴장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이날 불이 난 경기 이천시 대월면 초지리 W물류창고는 나란히 붙은 2층짜리 건물 2개로 이뤄졌다. 불은 창고와 이어진 지게차운전사 휴게실에서 처음 발생한 뒤 삽시간에 창고건물 2개로 번졌다. 오전 2시 38분 처음 화재를 신고한 경비원 김모 씨(57)는 “소화기로 불을 끄려고 했지만 불이 창고 벽으로 옮겨 붙으면서 커졌다”고 전했다.
이천소방서는 2시 41분 전 직원 소집을 뜻하는 광역2호를 발령했다가 곧바로 광역3호로 격상했다. 광역3호가 발령이 되면 주변 7개 소방서가 긴급 출동한다. 불이 난 지 약 3시간 만인 오전 5시 20분경 초진(큰 불을 진화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창고 안에 헤어스프레이와 주류, 치약 등 생필품이 대량으로 쌓여 있어 오후 늦게까지 잔불 정리가 이어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당시 창고에는 경비원 등 직원 12명이 있었지만 일찍 대피해 화를 면했다. 그러나 스티로폼 샌드위치패널과 우레탄폼 샌드위치패널로 만든 창고 건물은 대부분 타거나 무너졌다. 재산피해는 약 17억 원(소방서 추정).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양쪽에 철판을 부착하고 안에 스티로폼이나 우레탄폼을 넣은 샌드위치패널에 불이 붙으면 치명적인 유독가스가 발생하고 진화도 어렵다. 코리아2000 냉동창고, 서이천물류센터를 비롯해 대부분의 물류창고가 값이 싸다는 이유로 이런 샌드위치패널로 만들어졌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물류창고 화재 때마다 제도 개선을 건의했지만 시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미뤄져 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