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만 할수있다면 맨땅도 OK…” 고양시 동호인리그 시즌 마지막 경기 현장
실력은 아마추어지만
가끔은 멋진 병살 연출
내년 참가팀 13대1 경쟁
지난달 29일 오후 쌀쌀한 가운데 비까지 내려 그라운드 사정은 최악 수준. 하지만 메이저팀과 사이클론스팀 선수들은 우승팀을 가리기 위해 경기에 열중하고 있다. 이동영 기자
입김이 나올 만큼 추운 데다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지난달 29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야구장에서는 시즌 최강자를 가리는 ‘고양시리즈’가 열렸다. 3부 리그의 강자 ‘메이저’와 ‘사이클론스’가 마지막 경기에서 만났다. 땅이 질퍽거려 프로 같으면 중단했을 상황이지만 모처럼 경기에 나선 이들에게 비나 기온은 변수가 되질 못했다. 직장인, 자영업자,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동네 아저씨’들이 동호인 모임을 만들어 리그전을 펼치며 야구 인기를 반영하고 있다. 한국 야구가 세계 대회에서 수준급 기량을 선보이며 위상을 올리자 올해에만 서울시내에 수천 개의 야구 동호인 모임이 생겼다고 알려졌다.
○ 기본은 아마, 가끔은 프로
‘깡’ 소리와 함께 알루미늄 배트에 맞은 공이 메이저의 유격수를 향해 강하게 굴러갔다. 아마추어답게 공을 뒤로 빠뜨리는 ‘알까기’가 예상됐다. 하지만 유격수는 부드러운 동작으로 공을 잡았고, 재빨리 커버 들어온 2루수에게 가볍게 연결했다. 이 공은 다시 1루로 뿌려져 멋진 병살 장면이 연출됐다.
2루 도루 시도가 나올 때 포수 송구가 멀리 외야로 새버리는 장면도 없었다. 주자는 과감하게 슬라이딩을 시도했고 정확한 송구를 잡아낸 유격수가 아웃을 잡고는 프로선수처럼 손을 치켜들며 환호성을 울렸다. 그 장면만 보면 프로 경기.
하지만 1회 타자 2명이 지나도록 가슴보호대를 착용하지 않은 사실을 깜박한 포수가 타임을 요청하고 더그아웃에 들어가 보호대를 착용하며 씩 웃는 모습은 영락없는 아마추어였다. 프로에서는 땅에 한 번 닿은 공을 다시 쓰지 않지만 동호인 경기에서는 비용 때문에 한 경기를 공 4개로 해결한다. 감독의 작전은 도루, 고의4구 등에 불과하고 급하면 복잡한 손짓 대신 말로 사인을 전달하기도 한다. 외야 울타리에는 대기업 광고판 대신 붉은색의 ‘신속배달 하림각’ 현수막이 나부꼈다. 방어율과 다승, 탈삼진 등 3관왕을 차지한 ‘3부 리그의 선동열’ 선수를 보유한 사이클론스는 올해 시즌에서 단 1패를 기록했다. 패한 그날 ‘선동열’ 선수가 벌초 때문에 결장했다고 한다.
김재규 사이클론스 감독은 “말로 사인을 보내도 상대팀이 완벽하게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며 “야구가 좋아 주말에 용돈 털어 모이는 사람들이라 열의는 프로 못지않다”고 말했다.
○ 철저한 기록 관리와 안전한 경기장
고양시야구협회가 운영하는 고양리그는 수도권 일대에서 인기가 아주 높은 리그 중 한 곳이다. 2부, 3부 등 수준에 따라 리그별로 12개 팀씩 출전하고 있다. 지난달 내년에 참가할 팀을 모집했을 때는 경쟁률이 13 대 1이었다.
협회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주관하는 심판강습회 수료자를 심판과 기록원으로 내보내 공정하고 정확하게 경기를 운영하고 있다. 동호인들이 고양리그를 좋아하는 핵심 사유는 저렴한 연회비다. 동호인 팀들이 야구 열풍을 타고 우후죽순 생겨나자 사설 리그도 많이 생겼다. 대부분 연회비로 팀당 300만 원을 받는다.
하지만 고양리그는 200만 원으로 저렴한 편. 경기장도 정규 구장 크기다. 주택가와 떨어져 있어 안전사고 위험도 적다. 야구 동호인들은 국유지나 시유지 등을 활용해 더 많은 소형 야구장을 만들어야 저비용으로 리그를 운영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기은근 고양시야구협회 이사는 “야구장도 있고 저렴한 데다 기록 관리가 철저해 고양리그 인기가 높다”며 “야구장을 추가로 건설해 더 많은 동호인 팀을 고양리그에 참가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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