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압박 MB ‘원칙’ 수차례 강조… 손배訴도 부담
여론 악화 물류 타격-승객 불편에 철회 요구 커져
동력 상실 막판 3일간 1817명 이탈… 기세 꺾여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이 3일 전격적으로 파업을 철회했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법과 원칙을 강조한 정부와 사측의 강경한 태도에 노조가 손을 들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애초 노조가 파업 명분으로 밝힌 내용들도 국민 정서와는 거리가 멀어 정치투쟁이란 지적이 많았다. 여기에다 이번 파업으로 수출 손실액이 50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등 산업계 피해와 철도승객의 불편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노조가 사실상 ‘백기’를 든 셈이다. 철도노조는 “조건부 파업 철회”라며 “추후 협상과정에서 사측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제3차 파업을 벌이겠다”고 강조했지만 파괴력은 없어 보인다. 철도노조의 파업이 사실상 실패함에 따라 향후 다른 공기업노조 등 노동계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 법과 원칙 앞에 투쟁동력 ‘상실’
이명박 대통령은 파업 장기화의 고비였던 2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서울본부 비상상황실을 방문해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이 대통령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법이 지켜지지 않으면 이런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일자리가 보장된 사람들이 경제가 어려운 연말에 파업을 하고 있다”며 “지구상에서 이런 식으로 파업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코레일 사측에 ‘불법 파업과의 타협은 없다’는 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노조가 파업을 철회하기 전에는 사실상 협상의 여지가 없어진 셈.
특히 사측이 파업 참가자에 대한 징계와 사상 최대 규모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 방침을 밝힌 것이 노조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과거 다른 사업장에서 벌어진 파업 때도 손배소 등을 통해 노조에 책임을 물어 조기에 해결된 경우가 많다. 이런 방침은 향후에 벌어지는 노조의 파업동력을 약화시키는 효과도 가져왔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그동안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이 유야무야된 것이 오히려 노조의 무리한 행동을 방조한 측면이 있다”며 “파업 철회 뒤 손배소 등을 취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여론 악화에 사실상 ‘백기 투항’
지난달 26일 총파업이 시작됐지만 국민들의 분위기는 ‘무관심’ 그 자체였다. 사측의 단협 해지 등 노조가 내세운 파업 이유 중에는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필수공익사업장 제도로 인해 필수근무요원은 파업에서 제외된 데다 퇴직 기관사, 군인 등 대체인력을 50%까지 투입할 수 있어 파업의 효과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측이 파업 조합원에 대한 징계 절차에 들어가고 파업에서 이탈하는 조합원이 크게 늘면서 파업 대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1∼3일까지 전체 조합원 1만1718명 중 1817명(15.5%)이 업무에 복귀했다. 시간이 갈수록 이탈자도 늘어났다.
결정적으로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여객 불편이 급증하자 철도노조를 비난하는 여론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각 역에 설치된 게시판과 철도노조 홈페이지 등에는 파업 철회를 주장하는 승객과 누리꾼들의 글이 잇달았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민이나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한 노조의 단체행동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며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비교적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 철도노조원들의 파업에 대해 국민들이 분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 노동계 입지 약화 전망
철도노조는 조건부 철회임을 밝히며 3차 파업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와 사측의 강경 분위기를 감안할 때 재파업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파업 주동자 징계와 손배소 등으로 인해 노조 내부의 전력도 크게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향후 복수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 공공기관 선진화, 공무원 노조 등 일련의 노동계 투쟁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대규모 사업장 중 전면 파업을 벌이고 있는 유일한 노조였기 때문. 정부의 노동정책에 반발해 철도노조 파업을 시작으로 총파업 등 강경대응을 천명했던 노동계로서는 시작부터 기세가 꺾인 셈이다.
이번 철도노조 파업 사태를 노사간 협상문화 확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박영렬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법과 원칙을 지킨다는 것에 대해 노동계에서도 많은 생각을 할 것”이라며 “그렇다고 정부가 이긴 게임도 아닌 만큼 서로가 열린 마음으로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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