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오프 적용 대상 - 상한선 놓고 노사 줄다리기 벌일 듯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5일 03시 00분


복수노조 2년반 유예
대선-총선 있는 2012년
예정대로 시행될지 미지수
시행땐 조합원 확보 경쟁
복지중심 노동운동 가능성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전임자 줄어 ‘강성’ 힘빠져
中企 노조활동은 위축될 듯
내년 사업장 실태조사 후
타임오프 기준 정하기로

4일 발표된 복수노조 허용 및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합의안은 정부와 노동계, 경영계가 쟁점 사항을 하나씩 주고받은 타협안이란 평가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복수노조 유예를, 노동부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라는 결과를 얻었다. 두 사안 모두 각각 절충안을 택한 게 아니라 하나씩 각자의 요구조건에 거의 근접한 내용이라는 지적이다.

○ 복수노조 시행 2년 반 유예

노사정은 일단 2년 6개월의 준비기간을 둔 뒤 2012년 7월부터 복수노조를 시행하고 대신 사업장 혼란을 막기 위해 교섭창구는 단일화하기로 했다. 복수노조 허용을 유예한 것은 노사정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정부로서는 갑작스러운 제도 변경에 따른 혼란이 노사 평화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완충기간이 필요했다. 노동계도 한 사업장에 여러 노조가 생기면 기득권을 잃을 수 있고, 기업들은 노조의 주도권 싸움으로 혼란이 클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

이 제도가 실제 시행되면 국내 노동운동 및 사업장 문화가 어떻게 변할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힘들다. 일시적 혼란은 있겠지만 노조 사이에 조합원 확보가 최대 현안이 될 수밖에 없는 만큼 불필요한 투쟁이나 파업 등은 점차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여서 정치적 타협으로 왜곡될 경우 예정대로 시행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내년 7월 시행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내년 7월부터 시행되는 만큼 그때까지는 현행법에 따라 기업이 전임자에게 임금을 줄 수 있다.

노사정은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대신 타임오프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 제도는 △근로자 고충 처리 △단체교섭에 필요한 시간 및 결과를 조합원에게 설명하는 시간 △노사협의를 위한 시간 △사업장 내 산업안전보건과 관련한 사항을 처리하는 시간 △법원, 노동위원회 등 권리구제기관 참석 등 노조활동에 필요한 시간은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 한꺼번에 임금지급을 금지할 경우 노조에 큰 타격을 주기 때문에 노조의 반발을 완화하기 위한 절충안인 셈.

임금지급이 금지되면 현재 과도한 노조전임자 수를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노조전임자 수는 1만500여 명으로 연간 급여 총액이 4288억여 원에 이른다. 노조가 전임자 임금을 자체적으로 보전해주려면 조합비 인상 등 자구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조합원 1000명 이상인 노조 1곳당 전임자 수는 단체협약상으로는 평균 19.1명이지만 실제로는 24.6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노동부와 경영계는 이들 대부분이 실제 조합 활동보다 파업, 시위 등 과격 투쟁에 앞장선 만큼 투쟁 위주의 국내 노동운동 방식에도 변화가 올 것이란 기대다. 노조 전임자가 무리한 활동을 해 조합원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면 차기 선거에서 낙선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노동운동이 합리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투명한 노동운동’의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임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노조 활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조합원들도 ‘내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에 감시 기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 타임오프제 노사갈등 불씨?


노사정은 구체적인 타임오프제 적용 범위와 최대 적용 시간 등 세부사안은 내년 상반기(1∼6월)로 예정된 사업장 실태조사를 통해 정하기로 했다. 실태조사를 통해 사업장 및 업종별로 적용범위와 한계 시간을 정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전임자 임금지급과 같은 상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태조사를 해도 사업장별로 특성이 워낙 달라 통일된 적용 방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사업주는 최대한 시간 및 업무 범위 축소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반면 노동계는 늘리길 원해 노사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란 우려다. 당장 타임오프제 적용 시간에 대해서도 경영계는 상한선을 두자고 하지만 노동계는 한도 설정에 반대하고 있다.

노조활동 업무 및 시간 외 임금지급 금지는 당장 중소영세사업장 노조의 활동 축소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노동부 관계자는 “중소영세사업장은 인력과 재정에 여유가 없는 만큼 전임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규정 숙제… 유예 아닌 준비기간”
■ 임태희 노동장관 문답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4일 서울 여의도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정 합의문 발표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노총 경총과의 합의안은 현장의 우려와 현행법의 정신을 최대한 충실히 반영하면서 연착륙 방안을 모색한 결과”라며 “노동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총선 대선이 있는 2012년에 복수노조가 시행될지 우려가 많다.

“내년 상반기(1∼6월)에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세부 규정을 마련하면서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교섭창구 단일화 규정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그 규정에 맞춰 실질적인 준비에 들어가겠다.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어도 (복수노조 허용은) 기본권에 관련한 사항이고 국제적인 기준이다. 이를 우리 노동운동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노사가 나름대로 여러 가지 사정이 있지만 결정을 내려서 시행에 합의한 것이다. 단, 기업의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할 때 한 가지(전임자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으로 가는 게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교섭과정에서 3년 준비기간 안이 나왔을 때 이는 유예와 다를 바 없다고 했는데….

“그 당시는 다른 준비 없이 3년 후에 하자는 것이었지만 이번 합의는 제도를 완비한 뒤 시행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유예와는 다르다. 실질적인 준비 없이 가는 것은 유예지만 준비하고 가는 것은 다르다.”

―준비 기간에 전임자 문제는 6개월, 복수노조는 2년 6개월 차이를 둔 이유는….

“복수노조는 아예 새로운 노조가 생기고, 새로운 노조가 어떻게 교섭권을 갖느냐, 또 어떻게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느냐는 문제라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 전임자 급여 문제는 그것보다는 노조와 회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따르느냐의 문제라 시간이 좀 적게 걸릴 수 있다고 본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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