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실에 처음 가면 문 여닫는 방법부터 배워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려면 문을 여는 동시에 손목에 힘을 꽉 주고 손잡이를 살짝 올려야 해요. 지퍼가 달린 가방과 필통도 문밖에서 미리 열고 입실해야 해요. 숨도 크게 쉬어선 안 돼요. 큰 소리를 내거나 다른 사람을 방해하는 행동을 하면 바로 독서실 실장한테 ‘호출’ 당하거든요.”
방과 후 고2 문모 양(17)은 버스로 20분 걸리는 독서실에 간다. 이 독서실엔 열람실, 복도, 휴게실, PC실 등 독서실 곳곳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어 깜빡 졸기만 해도 “OO학생, 당장 실장실로 오라”는 방송이 울려 퍼진다.
학생들의 내신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독서실 풍경도 삭막해졌다. 독서실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멋진 이성과의 운명적 로맨스? 이건 386세대에나 있었던 먼 나라 얘기다.
문 양은 “평소보다 독서실에 늦게 도착하거나 이성친구와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되면 실장이 부모님에게 곧바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 알린다”면서 “어떨 땐 독서실이 감옥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학생관리가 철저하기로 소문난 독서실은 ‘경쟁률’이 높아 들어가기도 쉽지가 않다. 학교성적표와 학업계획서를 제출하고 실장과의 개별면담을 통과해야 독서실에 발을 들일 수 있는 ‘허가’가 떨어진다. 이런 독서실은 주로 학부모들이 선호한다.
‘OOO 군이 독서실에 입실했습니다.’
고2 김모 군(17) 어머니에게 휴대전화 문자가 도착했다. 독서실 출입구에 비치된 ‘입·퇴실 체크기’에 학생들이 번호를 입력하면 곧바로 학부모의 휴대전화로 문자가 전달된다. 이런 독서실에선 휴게실에서도 휴대전화와 MP3플레이어, 휴대용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의 사용이 금지된다. 사용하다 발각되면 즉시 퇴실조치를 당한다.
학부모들 사이에 인기 있는 이런 독서실은 이용 학생이 많다보니 지정석을 얻기까지는 3개월에서 6개월이 걸린다. 지정석을 얻어도 출입문이나 복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방해받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명당’을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지정석은 6개월 이상 꾸준히 독서실에 다니면서 성적이 상승하는 학생에게 특권처럼 주어진다.
지정석이 없는 학생은 어떻게 공부할까? 독서실에 비치된 공동 사물함에 짐을 넣고 공부할 책 한두 권만 들고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며 공부하는 바람에 ‘메뚜기’라고도 불린다. 책상마다 붙어있는 자리 주인의 ‘학습계획표’를 확인해 주인이 돌아와 마주치기 전에 그 자리를 떠나주는 것이 불문율. 자리를 옮길 때마다 좌석번호를 독서실 실장에게 일일이 보고해야 하므로, 자리 주인이 돌아와 “책상이 지우개 가루로 더럽혀져있다”고 불만을 제기할 경우 실장은 범인(?)을 추적해 ‘경고’ 메시지를 날린다. 이런 경고가 3회 누적되면 곧바로 퇴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인기 독서실에선 기가 막힌 일도 일어난다. 지정석의 주인인 학생이 ‘지정석 양도권’을 만들어 다른 학생에게 팔기도 하는 것. 자신이 독서실을 이용하지 못하는 날엔 다른 학생이 자기 자리를 이용하도록 하고 하루 이용료를 받는 것이다.
고2 박모 군은 “주중엔 공부하고 주말엔 이 양도권을 팔아 번 돈으로 놀러가는 친구도 있다”면서 “부모님들은 이런 수법을 꿈에도 모를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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