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문화’ 취재기자들의 못다쓴 이야기들
“이벤트성 다문화행사보다 마음이 통하는 자리로
이주민 2세들 적응 도와 당당한 한국인으로 키워야”
《“외국인 100만 명 시대입니다. 10년 전보다 6배나 늘었습니다. 올해 초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국가브랜드위원회가 설치된 것도 다문화 사회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은 ‘국제결혼이 낳은 2세가 한국사회에 흡수되지 못하고 반감을 가질 경우 우리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다’고 경고했습니다. 프랑스 이민사회의 유혈 사태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라는 말에 다문화 현상이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하게 풀어야 할 숙제인지 실감했습니다.” 2009년 한 해 다문화 취재에 나섰던 강혜승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동아일보는 올해 건강한 다문화를 위해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2009년 연중기획 ‘달라도 다 함께-글로벌 코리아, 다문화가 힘이다’ 시리즈에 참여했던 취재기자들의 느낌을 생생하게 소개합니다.》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날것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베트남 출신 여성 티응아 씨(32)는 자존심이 강한 베트남 엘리트 여성입니다.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와서 한국 남자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는 지하철에서 베트남어로 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베트남인임을 알게 된 남자들이 다가와 말을 붙이기 때문이죠. “어디서 왔어요?” “착하게 생겼네. 결혼했어요?” “돈 벌고 싶어요? 나랑 애인하면 한 달에 100만 원 줄게.”
티응아 씨는 “무섭고 싫다”며 웃었습니다. 그 웃음이 더 마음 아팠습니다. 약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거칠고 야만스러운 태도가 창피했습니다. 모국이 가난하다는, 죄 아닌 죄로 인한 모멸감을 얼마나 더 겪어야 하는 것일까요.(김현지 기자)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의 이른바 ‘국경 없는 마을’을 처음 찾은 건 200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사실 첫인상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거리 곳곳에 쓰레기가 뒹굴었고 휘갈겨 쓴 듯한 외국어 간판이 난립했었죠. 골목에서 마주치는 외국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습니다. 그로부터 7, 8년 후 다문화 취재를 위해 찾은 원곡동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거리와 간판은 말끔히 정비됐고 외국인을 위한 주민센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외국인들의 표정도 훨씬 밝아졌죠.(이성호 기자)
○…올해 초 프랑스 다문화 취재를 위해 2005년 이슬람계 청소년 소요사태의 중심지였던 생드니를 찾았다가 봉변을 당했습니다. 사진 촬영을 하던 중 이슬람계 청소년 3명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것이죠. ‘관용’의 나라 프랑스가 어떻게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그 ‘관용’이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최근 프랑스는 관용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서 프랑스 정체성 토론회를 열고 있지요.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나라입니다.(송평인 기자)
○…다문화 취재를 위해 아일랜드,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 3국을 방문했습니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주민과 그들의 자녀들을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바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를 유지 및 발전시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유덕영 기자)
○…다문화가정 아이들에 대한 별도의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들 중 상당수는 다문화가정에서 자라다 보니 언어도 2개 이상 알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여건에 있는데 경제적 조건이 안 되다 보니 좋은 재목이 썩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김윤종 기자)
○…‘대체 뭐가 다른 거지?’ 올여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다문화 가정 프로야구 관람 초청 행사에 참가한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은 야구를 좋아하는 여느 한국 아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사인볼을 받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들 중 누군가는 몇 년 후 한국 프로야구 선수로 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올해부터 프로농구에서는 ‘하프 코리안’(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 선수들이 코트를 누비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맹활약할 때는 여전히 ‘하프 코리안’이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그런 구분이 과연 필요한 것일까요.(이헌재 기자)
○…다문화와 관련한 많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플래카드 내걸고 다문화가정에 경품이나 지원금을 쏟아주는 자리는 불편합니다. 낯선 사람들에게 친절한 손길은 꼭 필요하지만 이들을 소외계층으로 규정하고 막연히 도움을 주려는 방법은 낡았다고 생각합니다.(신민기 기자)
○…취재 과정에서 만난 결혼 이주 여성이 가장 원하는 것은 ‘일자리’였습니다. 한국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죠. 한국어도 서툴고 직업 교육도 받지 못한 이들이 취업을 한다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입니다. 다문화가정 아이들도 다른 외모, 낮은 교육 수준으로 차별 받아 취업이 어려워진다면 영원히 한국 사회의 이방인으로 살게 될 테죠. ‘복지’ 이후를 고민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우경임 기자)
○…올가을 서울 마포구 염리동 디지털 라디오 방송국 디지털스카이넷에서 ‘다문화 가족을 위한 모국어 방송’의 외국인 진행자들을 만났습니다. 이집트에서 온 마르와 자흐란 씨(22)는 “한국 사람들은 아랍권 사람들을 낯설어한다”고 말했습니다. 베트남에서 온 황밍옥 씨(25)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늘었지만 그들을 위한 방송은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한국인과 외국인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다양한 형식의 방송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황인찬 기자)
○…깜짝 놀랐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외양이 한국인과 별다를 바 없었던 겁니다. 부모가 중국인이나 일본인인 경우, 부모 중 한 명만 외국인인 경우에 아이들 생김새는 우리와 큰 차이가 없었죠. 우리는 다문화 하면 흔히 서로 다른 외양과 언어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두 한국인처럼 생기고 한국인처럼 말합니다.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습니다.(이미지 기자)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다문화도서관 ‘모두’에서 만났던 다문화가정의 어머니들. 직접 인형극 소품을 만들고 한국어로 동화 구연 연습을 하던 어머니들. 아이들에게 고향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설렘이 느껴졌습니다. 다양한 나라의 동화를 접하는 아이들의 눈동자도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서툰 한국어로 모국의 전래동화를 들려주는 엄마와, 엄마 고향 나라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운 아이들, 그 안에서 진정한 다문화가 자라나고 있었습니다.(장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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