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보내는 희망편지]가수꿈 키우는 高2 박새빈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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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9일 03시 00분


“친손자처럼 돌봐주는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성공하고 싶어요”

저는 경남 김해시에 사는 부산 국제영화고 2학년 박새빈(17)입니다. 누나 여동생과 함께 돌아가신 할머니의 친구분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집을 나가고 할머니가 3년 전 돌아가신 뒤 저희를 가족처럼 보살펴 주는 고마운 분입니다.

제 꿈은 가수입니다. 가수라는 꿈이 부끄러웠던 적도 있어요. 친구들에게 놀림거리가 될까 봐 목표도 없이 방황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저희 남매를 거두어 주신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누나와 여동생을 위해서라도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잘한다는 칭찬도 많이 받았고, 친구 손에 이끌려 기획사 오디션에 갔다가 5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상한 적도 있어요.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으로 학원에서 기타를 배우고 있어요. 요즘에는 아르바이트보다 학교 공부에 더 신경 쓰라고 ‘짠순이’ 누나가 학원비를 내주고 있어요.

가수 중에서는 이승철 아저씨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요. 그 어려운 노래를 너무나 편안하게 부르는데, 정말 노래를 즐기는 분인 것 같아요. 꿈을 위해 한발 다가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수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요.
‘우상’ 이승철 씨 조언

“가수보다 뮤지션을 꿈꾸렴”

조바심 내면 큰 가수 못 돼… 좋은 음악 들으며 내공 쌓아야

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가수 이승철 씨의 콘서트에서 박새빈 군(왼쪽)이 이 씨를 만났다. 이 씨는 가수를 꿈꾸는 박
군에게 “너는 이미 확고한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며 등을 두드렸다. 인천=이종승 기자
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가수 이승철 씨의 콘서트에서 박새빈 군(왼쪽)이 이 씨를 만났다. 이 씨는 가수를 꿈꾸는 박 군에게 “너는 이미 확고한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며 등을 두드렸다. 인천=이종승 기자
관중의 열기로 뜨거운 공연장 안에서 박새빈 군은 자꾸만 몸을 떨었다. “제 귀에 들리는 음악이 진짜 맞나요? 온몸에 소름이 돋아요.” 5일 오후 7시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가수 이승철 씨의 무대는 새빈이가 처음으로 경험하는 콘서트였다. “이렇게 많은 관중도 마음은 다 하나일 거예요. 이 노래에 정말 행복하다고.” 새빈이는 첫 콘서트에서 무대 뒤 대기실까지 방문하는 영광을 얻었다. 공연을 한 시간 앞두고 스태프가 분주히 오가는 대기실에서 새빈이는 이승철 씨를 처음 만났다. 이 씨는 대뜸 “판검사보다 어려운 게 가수인데 차라리 공부를 열심히 해 판검사가 돼라”고 말했다. 긴장에 몸이 뻣뻣해진 새빈이에게 이 씨는 “백 마디 말보다 오늘 내 콘서트를 보고 느껴라”고 했다.

아직도 음악소리가 새빈이의 귓가를 맴돌던 다음 날 오후. 새빈이는 이 씨의 생일파티 준비가 한창인 선상카페에서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이 씨는 매년 팬클럽 ‘새침떼기’와 생일을 같이 보내고 있다. 데뷔한 지 24년째. 소녀였던 팬들은 이제 ‘새침떼기’란 이름이 쑥스러운 나이가 됐을 만큼 오래된 친구다.

새빈이는 용기를 내 이 씨 앞에서 가수 이적의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라는 노래를 불렀다. “목이 쉬었네?” 오디션으로 가수를 뽑는 케이블방송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이 씨의 거침없고 날카로운 비평을 걱정했던 새빈이가 침을 꼴깍 삼켰다. “지금은 노래를 많이 부를 때가 아니라 들어야 할 때야.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은 음악을 많이 들으면 나중에 큰 재산이 돼.” 초등학교 때부터 미국의 빌보드 차트를 줄줄 외우고 다녔다는 이 씨의 경험담에 새빈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씨는 직접 노래를 부르며 발성의 차이를 설명했다. 이 씨는 진성(眞聲) 가성(假聲) 반가성(半假聲)을 넘나들었다. 발음에 대한 꼼꼼한 지적도 이어졌다.

이 씨는 “아직 어린 나이에 맹목적으로 한 가지만 생각하기보다는 다각적으로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가수보다는 뮤지션이 되겠다는 넓은 시각으로 준비를 해야 해. 요즘 학생들은 음악이 좋으면 무조건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만 꿈꾸는데 가수 말고도 음악과 함께할 수 있는 직업이 얼마든지 있어.” 새빈이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 시간 때문에 조급해했다.

“하루빨리 성공해서 돌아가신 할머니 묏자리도 다시 보고, 가족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새빈이에게 이 씨는 “너무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고 다독였다. 이 씨는 일찍 성공했다. 록밴드 ‘부활’의 보컬이던 19세 때 ‘희야’를 불렀다. “온전히 나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스타가 돼 방황하고 괴로웠던 적도 있었어. 그 덕분에 음악에 더욱 매달리게 돼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지만 말야.” 이 씨는 마음껏 부딪쳐보라고 새빈이를 북돋웠다. “밴드도 하고 언더그라운드 활동도 하면서 충분히 경험과 실력을 쌓아 내공을 길러야 해.” 이 씨는 밴드 ‘부활’로 활동하던 시절 종로 일대를 돌며 직접 포스터를 붙이고, 무거운 악기며 음향장비를 들고 다녔던 일도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며 생생한 경험담을 들려줬다.

“너는 이미 확고한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있어. 나중에 성공해서도 꼭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어라.” 첫 만남 때만 해도 어깨가 처져 있던 새빈이는 이 씨와의 만남을 끝내고 돌아가며 가슴을 활짝 폈다. “당장 내일부터 학교 시험공부도 열심히 하고 악기 연주도 배워야겠어요.”

희망편지 주인공 후원 문의 1588-1940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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