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모래내 수색역에 위치한 ‘형제 대장간’. 변변히 앉을 의자 하나 없는 10평 도 채 되지 않는 이곳은 류상준(56)·상남(52) 형제가 뜨거운 화덕 앞에서 쉴 새 없이 메질을 하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일터다.
“13살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쇠를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아버지께서는 소 발굽 편자를 만드는 일을 하셨어요. 늘 쇠붙이 만드는 일을 보고 자랐죠. 그런데 옆집 대장간 아저씨는 불속에 쇠를 넣기만 하면 편자뿐만 아니라 호미, 낫, 도끼 등 못 만드는 게 없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옆집 아저씨께 정식으로 요청해서 대장간 일을 하게 됐어요.” 벌써 43년째 형 상준 씨는 풀무질부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 눈만 뜨면 쇠망치를 잡았다. 워낙 꼼꼼한 성격 탓에 물건에 조그마한 흠이라도 생기면 가차 없이 내동댕이 쳐버렸다. 지금도 물건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한다. 그의 꼼꼼함 때문에 한번 찾은 고객은 평생고객이 돼 버린다. 동생 상남 씨는 12년 전 하던 사업이 여의치 않아 고민하던 차에 형의 제의를 받아 지금까지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형 상준 씨가 화덕에서 벌겋게 달아 오른 작두날을 꺼내 모루 위에 올리면 동생 상남 씨는 해머로 수십 번 ‘쿵쾅쿵쾅’ 메질을 한다. 그리고 쇳덩이를 물속에 넣어 식힌다. 이렇게 담금질을 거듭하면서 날은 더 얇아지지만 쇠는 더욱 강해진다. 이들의 장인정신으로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 형제는 주로 농기구를 제작했다. 지금은 농기구를 찾는 고객이 거의 없다. 간간히 단골고객에게만 제작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좁은 대장간은 각종 농기구들로 가득 차있다. 호미, 곡괭이, 낫, 도끼 등 민속촌에서 볼 수 있는 물건은 다 있다. 요즘은 각종 농기구 대신 공사장이나 건축을 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를 만들고 있다. 얼마 전 북한의 개성공단 건설에 필요한 도구를 2000여 개나 주문 받아 납품했다. 또 역사드라마 속 소품을 제작하느라 정신이 없다. 대장금, 태왕사신기 등의 작품에 등장했던 농기구나 무기가 이들에 의해 제작 됐다. 대장간은 옛 시골 장터나 큰 마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었다. 떠돌이 대장장이도 간간히 눈에 뜨였다. 하지만 논농사가 기계화되고 농기구 생산도 자동화 되면서 대장간은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이들은 ‘전통대장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우리는 그래도 먹고 살만 해요. 우리나라에 몇 곳 남지도 않은 대장간을 보면 일거리가 너무 없어요. 중국 제품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경쟁력도 없고요. 전통적인 방식에 의해 제작하는 곳은 거의 없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들이 하나하나 만든 물건은 그 수명이 수십 년이나 된다. 이들은 “중국산 제품보다 가격이 서너 배가 비싸지만 손에 감기는 편안함이나 쇠의 강도 등은 비교할 수도 없다”고 자부했다.
‘형제 대장간’은 철도청 부지로 올 3월 자전거 보관소로 탈바꿈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갈 곳이 없는 형제는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다른 곳에 대장간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메질 소리로 인한 소음 때문에 터를 내주는 곳이 없었다. 이들은 “당장은 버틸 때까지 버텨볼 예정이에요. 하루하루가 불안하죠. 그런데 누굴 탓 하겠어요. 세월이, 시간이 이렇게 됐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쇠 메질 소리가 끊이지 않는 도심 속에서 40여 년을 지켜온 두 형제의 대장간, 그 안에서 2500도의 불을 지피고 쇠를 만지는 두 대장장이는 “이 일은 내 ‘천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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