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건 그 후]<4>김할머니 연명치료 중단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4일 03시 00분


175일째 숨소리로 묻는다‘生과 死의 경계는 어디인가’

호흡기 뗀뒤 자발호흡 계속… 존엄사 허용범위 합의 먼길
병실 번갈아 지키는 가족들 “상처 많았지만 이제는 평안”


13일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15층 김옥경 할머니의 병실. 맏사위 심치성 씨가 곁을 지키고 있다. 김 할머니는 174일 동안 인공호흡기 없이 자발적으로 호흡하고 있다. 우경임 기자
13일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15층 김옥경 할머니의 병실. 맏사위 심치성 씨가 곁을 지키고 있다. 김 할머니는 174일 동안 인공호흡기 없이 자발적으로 호흡하고 있다. 우경임 기자
6월 23일 김옥경 할머니(77)의 인공호흡기는 제거됐다. 174일이 지난 13일 할머니에게 연결된 줄은 영양공급용, 수액공급용, 산소공급용, 배변용 등 4개다. 인공호흡기 외에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본적인 처치는 계속되고 있다. 김 할머니는 자발적으로 호흡은 할 수 있지만 산소공급량이 충분치 않아 산소 튜브를 연결했다. 77세 생일인 10월 14일이 지나고 나서부터다. 11일에는 산소포화도가 90% 이하로 떨어져 위험한 고비를 한 차례 넘겼다.

산소포화도 97%, 맥박 분당 95회, 혈압 101∼62mmHg. 현재 모든 수치는 양호하다. 다만 할머니의 오른팔이 혈액순환이 안 돼 왼팔보다 2배 정도 부었다. 압박붕대 사이로 푸르스름한 살이 보인다. 벌써 22개월째 누워 있다 보니 욕창도 심해졌다. 항생제를 투여하며 2시간마다 체위를 바꾸고 있다. 주치의인 박무석 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할머니의 상태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13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15층 병실에서 만난 맏사위 심치성 씨(49·사업)는 가족들이 돌아가며 병실을 지키고 일요일마다 모두 모여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심 씨는 “중환자실에 계실 때와 달리 가족들이 항상 옆에서 돌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의 첫째 딸은 “인공호흡기를 떼고 바로 돌아가셨다면 얼마나 죄스러울까 싶었는데 이렇게 함께 기도하며 시간을 보내게 돼 평안해졌다”고 말했다.

사실 가족들은 김 할머니의 소송이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가져올 줄 몰랐다고 했다. ‘부모 잡아먹은 놈’ ‘돈 때문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오랜 병간호로 지친 가족들은 상처 하나씩을 더 얻었다. 심 씨는 “평소 장모님이 밝히신 뜻을 존중하고 마지막 순간을 가족이 함께하기 위한 선택”이라며 “병원비가 적은 돈은 아니지만 감당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주어진 생명만큼 살다 가면 된다. 생명은 인간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다. 그것이 할머니의 뜻이었다고 한다. 심 씨는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되묻고 싶었다”고 했다.

의료계 전체로 퍼진 파장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환자와 보호자의 연명 치료 중단 요구가 거세져 6월 이후 대형 병원마다 연명치료 중단을 문의하는 환자 보호자가 크게 늘고 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요즘에는 연명치료 중단을 당당히 요구하는 보호자도 늘었고 그렇지 않으면 병원을 옮기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사회 각계에서 연명치료 중단 지침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된 것도 김 할머니가 가져온 파장이다. 7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존엄사란 용어 대신 무의미한 연명치료란 말을 쓰기로 했고, 기본 원칙을 도출해냈다. 10월에는 대한의사협회가 자체 지침을 만들었다. 그러나 두 가지 점에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바로 △지속적 식물인간도 연명치료를 중단해야 하는가 △사전의료지시서 등을 남기지 않은 환자의 의사표시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 것인가다.

말기 암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해야 한다는 쪽으로 사회적 합의가 됐지만 김 할머니같이 지속적 식물인간인 환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모아지지 않고 있다. 간혹 이런 환자들이 깨어나는 사례가 있어 의학적으로 ‘죽음’을 선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보건복지가족부는 각계 전문가 20명이 모인 가칭 ‘연명치료 중단 추진 협의체’를 연내 구성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입법 과정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할머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다시 잦아든다.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다시 깨어날 수 있을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인간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결정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할머니의 숨소리가 힘겹게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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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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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2-14 04:07:37

    77세의 할머니께 기적이 있기를 바라마지 아니한다! 자녀분들도 그동안의 외부의 오해를 모두 떨쳐 버리고 임종예배의 반대급부로 주어지는 반성 속에서 마지막 효를 다하는 모습을 보게 되어 동정이 간다. 만약 개신교도인 이명박 대통령의 어머니가 아직도 살아 있어서 연명치료 중에 있다면 과연 존엄사란 미명하에 산소호흡기를 떼는 우를 범할까 하고 가정해보기도 했다. 만약 대통령의 딸이 집창촌 창녀가 돼 있다면 대통령이 이를 알고도 방치할 수있을까 하는 경우와도 같다. 예수가 창녀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 중의 하나라고 가르쳤던가?

  • 2009-12-14 03:55:52

    치매에 걸린 부모를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에 쓰레기 버리 듯이 버리는 풍조가 한동안 유행하는가 하더니 종엄사란 미명하에 임종예배까지 드리고 산소호흡기를 떼어냈다는 소식에 개신교가 이토록 타락했는가 싶은 생각까지들었다. 연명치료에서 되살아나 정상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라 하더라도 당사자가 여하한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당사자에게 있어서 연명치료가 고통이 아니라면 존엄사란 미명하에 포기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해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이 못난 소년 또한 87세의 모친이 연명치료 중에 있다. 희망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기적이 없으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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