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초등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가 사상 최초로 30명 아래로 떨어졌다. 서울시교육청이 6일 발간한 ‘2009년 서울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의 초등학교 학급당 평균 학생 수는 올해 28.9명으로 지난해 30.2명보다 1.3명 줄었다. 이는 10년 전(37.3명)보다 무려 8.4명 줄어든 수치. 서울 교동초등학교(종로구 경운동)는 올해 학급당 학생 수가 14.3명으로 서울에서 가장 적다. 저출산으로 인한 초등학생 수 감소는 저학년일수록 더 심하다. 1, 2학년의 경우 한 반 인원이 20명이 채 안 되는 학교도 적지 않다. 서울시교육청 최창수 장학사는 “이런 현상은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서 발견된다”고 말했다.》
대부분 수업 조별활동-토론 똘똘한 소수가 나머지 ‘압도’ “계속 같은 반 될 확률 높은데 한번 따돌림 당하기 시작하면…” “공부 못잖게 발표력-리더십” 스피치학원 수강생 껑충
학급 정원이 감소하면 학생 한 명 한 명에 담임교사가 쏟는 관심과 시간이 더 늘어나고, 수업시간 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발표할 기회도 많아져 학업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학생 수 감소를 우려하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 인원이 적다 보니 공부든 운동이든 잘하고 못함의 실력차가 극명히 드러나고, 친구들 사이에서 한번 소외되면 교우관계를 회복하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의 한 태권도장. 매달 이곳에선 인근 초등학교 1학년 ○반의 ‘단체 생일파티’가 열린다. 같은 달에 생일을 맞은 아이들이 이날의 주인공. 나머지 아이들은 초대 손님으로 파티에 참석한다. 다 함께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생일을 맞은 학생이 케이크의 촛불을 끄면 아이들은 엄마들이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도장에서 뛰논다.
반 정원이 17명인 이 반의 학부모들은 반 학생 전원이 참여하는 이런 생일파티를 올해 초부터 매달 진행해 왔다. 반 학생 수가 적다 보니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하는 일부 학생들이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한 어머니는 “우리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한 반이 60명 이상이었기 때문에 생일파티에 초대받는 학생보다 초대받지 못하는 학생이 훨씬 더 많아 문제가 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요즘엔 학생 수가 하도 적다 보니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하면 금방 ‘표시’가 난다”고 말했다.
전교생을 모두 합해도 200명 안팎인 초등학교도 적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학년 때 한반이었던 친구가 2, 3학년 때 계속 같은 반이 될 확률은 높아진다. 그래서 자녀가 반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 엄마들에겐 지상과제가 됐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주부 박모 씨(39·서울 강남구 대치동)는 학기 초마다 딸과 친한 친구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 생일을 조사해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친한 친구의 생일이 돌아오면 친구에게 줄 생일카드나 선물을 딸 손에 들려 보낸다. 딸에게 어떤 친구와 친한지, 누구와 친해지고 싶은지를 묻고 딸이 그 친구와 함께 주말 체험학습을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해 주기도 한다.
박 씨는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체험학습은 아이의 사회성과 인성을 발달시키려는 게 주된 목적이지만 딸이 따돌림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곁에서 도와줄 친구를 미리 많이 만들어 놓으려는 목적도 크다”면서 “초등학생들의 교우관계는 엄마들이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전교생 수가 적다 보니 아이가 학교에선 한번 따돌림을 당할 경우 학년과 반이 바뀌어도 계속 따돌림을 당하는 이른바 ‘영따(영원한 따돌림)’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 정원이 줆에 따라 학교 수업형식이 토론, 실험, 조별활동 위주로 확 바뀌면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언변이 뛰어나고 적극적인 태도를 가진 소수가 반 전체를 압도해 나머지 학생은 그들의 의견에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주종관계’가 형성되는 것. 또 발표력이 떨어지는 학생이 수업시간에 자신감을 잃고 입을 더 굳게 다무는 일도 생긴다.
주부 윤모 씨(37·서울 강남구 개포동)는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박모 군(11)이 조별 토론시간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뒤 아들을 어린이스피치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학원에서 박 군은 자기 소개를 하는 법, 선생님의 질문에 근거를 들어 답하는 법, 또래 친구들과 토론하는 법처럼 ‘말 잘하는 법’을 익힌다.
수업시간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가, 친구들 앞에서 자기 생각을 똑 부러지게 표현할 수 있는가, 또래 친구들을 얼마나 잘 이끄는가가 학교생활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가 되다 보니, 주말이면 스피치학원이나 리더십교육프로그램에 초등학생과 학부모들이 몰린다.
모둠활동이 주를 이루는 학교 수업 시간에 한마디도 하지 못하거나, 모둠 대표로 발표할 때 뛰어난 실력을 보이지 못하면 친구들에게 무시당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에 자녀에게 독서·토론 그룹과외를 받게 하는 엄마들도 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생 수가 적어 모든 학생에게 골고루 기회가 돌아가지만, 그런 이유로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에겐 발표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게 된다”면서 “전 과목 수업이 조별과제나 조별활동으로 진행되다 보니 아예 손을 놓고 친구들이 참여하는 모습만 바라보는 학생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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