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정파위해 비리 은폐”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6일 03시 00분


■ 이갑용 前위원장 노동운동 회고록 통해 쓴소리

DJ 퇴진 반대하던 인사들 국회의원 -KBS부사장 변신
주식투자로 공금 날려도 “분란 일으킨다”며 덮어

이갑용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52·사진)이 15일 울산 동구청 대강당에서 출판기념회를 갖고 선보인 저서 ‘길은 복잡하지 않다’를 통해 민주노총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 책 서문에서 그는 “사람으로 치면 열다섯 살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민주노총은 제도권에 들어가 썩기 시작했다”며 “오늘날 민주노총이 왜 이렇게 됐는지 위원장을 했던 내부자로서의 경험과 조직 밖에서 경험한 외부자의 시선으로 냉정하게 진단해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 내부 비리도 외면하는 정파주의

그는 민주노총의 뿌리 깊은 정파주의가 조직을 망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전 위원장은 “모두는 입으로는 문제라고 얘기하면서 결국 조직의 보위를 위해, 정파의 득세를 위해, 동지를 지키고자 덮고 넘어갔다”고 말했다.

위원장 재직 시절 목격한 민주노총 간부들의 정치지향성도 언급했다. 이 전 위원장은 자신이 1998년 김대중 정권 퇴진을 주장하자 “일부 연맹 위원장과 민주노총 간부들이 반대하고 나섰다”며 “반대를 했던 언론연맹 위원장은 몇 달 후 KBS 부사장으로,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사무총장을 했던 사람은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사무금융노련 위원장은 산재의료원 이사장 등으로 화려한 변신을 했다”고 전했다. 1997년 민주노총 재정위원장 채모 씨가 공금 수억 원을 주식에 투자했다가 날린 이른바 ‘재정위원회 사건’의 조사과정에서 목격한 민주노총의 무책임성도 비판했다. 이 전 위원장은 “조사를 시작하자 일부 연맹과 지역 본부에서 ‘투쟁하라고 뽑아 줬더니 투쟁은 안 하고 분란만 만든다’며 난리가 났다”며 “재정위 실무자를 불러 조사를 하니 자료가 없다고 잡아뗐고 통장을 다 가져오라고 하니 불태우고 없다고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민주노총이 총체적인 비리집단으로 불려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조직 돈 수억 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했다”고 했다.

출판기념회 직후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 전 위원장은 “이 책의 출판으로 민주노총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개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김대중, 노무현 실망만 안겨줘

이 전 위원장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도 소개했다. 이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 세 번 만났다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내 학생들을 가르치려는 선생님의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 파업 당시와 울산 동구청장 재직 때 만난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악법은 투쟁으로 깨야 한다’는 명연설로 노동자들을 설레게 했지만 이듬해 골리앗 파업 때 골리앗에 올라와 ‘그만큼 했으면 됐으니 내려가서 투쟁하자’며 태도가 달라졌다”고 실망감을 나타냈다.

이 전 위원장은 1984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노조 사무국장과 위원장을 지냈다. 1990년 5월 노조 비상대책위원장 자격으로 조합원들과 함께 골리앗크레인에 올라가 14일간 ‘고공농성’을 주도했다. 1998년 4월부터 1999년 9월까지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다. 2002년 7월부터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울산 동구청장을 지내다 파업 공무원에 대한 징계 거부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2006년 5월 사퇴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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