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고3 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넌 나중에 후회할 일 만들지 마라.” 2008학년도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형은 당시 중3이던 동생에게 이런 통한의 한마디를 던졌다. 고2 때까지 반 1등을 도맡아 했던 형. 그러나 수능성적 발표 후 당초 목표했던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에 상당히 못 미치는 대학 및 학과에 원서를 넣어 합격했다. 이런 소식은 동생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울산 무거고 2학년 김희진 군(17)은 중3이 마무리되어 가던 2007년 12월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지난 3년간 온 집안의 관심은 대입을 앞둔 형에게 쏠려 있었다. 공부 잘하는 형의 그늘 속에서 김 군은 게임과 TV에 빠져 지냈다. 방학 땐 오전 1시까지 게임을 했고, 다음날 점심을 먹을 때쯤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했다. 학기 중에도 김 군의 생활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 군의 표현을 따르면, 당시 김 군은 ‘친구들에게 창피하지 않을 만큼’만 공부했다. 수업시간엔 졸지 않았고 중1 때부터 영어 수학 단과학원을 다녔지만, 김 군의 ‘사전’에 복습이란 단어는 결코 없었다. 학원도 2, 3개월에 한 번씩 바꿔 실력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시험공부라곤 시험 일주일 전 ‘벼락치기’가 전부였다. 김 군은 중학교 3년 내내 중위권에 머물렀다. 반에선 8등 안팎, 전교에선 100∼110등이었다.
“저 방학 한 달 동안 기숙학원 ‘고1 선행반’에 들어갈래요.”
대입에서 쓰라린 아픔을 맛본 형을 지켜본 김 군은 중3 겨울방학 때 스스로에게 기숙학원이란 ‘극약처방’을 내렸다. 학업도 학업이지만 불규칙한 생활습관, 휴대전화, 게임, TV 같은 유혹에 번번이 흔들리는 약한 마음부터 완전히 개조하지 않으면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변하지 않으면 고등학교에선 더 뒤처질 것이란 불안감, 형의 전철을 밟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김 군을 움직였다. 부모님도 “이번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아들의 말에 기숙학원행을 허락했다.
기숙학원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오전 6시 기상,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이어지는 정규수업,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진행되는 자율학습…. 김 군에겐 시간표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첫날부터 집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간절해 눈물이 핑 돌았다.
자기의 목표를 종이에 쓰고 한 달간 어떻게 공부할지 계획을 세우라는 강사의 말엔 순간 ‘멍’ 해졌다. 지금껏 단 한 번도 학습계획이란 걸 세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목표 대학, 장래 희망을 거침없이 쓰는 모습이 부럽게 느껴졌다. 김 군은 자신이 어떤 대학에 가고 싶은지, 장래엔 무슨 직업을 가질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서 물러서면 끝이다.’ 김 군은 마음을 다잡았다. 김 군이 들어간 기숙학원엔 고1 선행반이 한 반만 개설되는 바람에 김 군은 전국 각지에서 온 상위권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게 됐다. 그중엔 외국어고 입학이 결정된 학생, 중학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학생도 있었다.
금세 고교과정을 따라가는 같은 반 친구들을 보면서 김 군은 자극을 받았다. 독하게 변했다. 실력 차를 줄이기 위해 친구들이 노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영어 단어장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강사가 귀찮아할 정도로 쫓아다니며 묻고 또 물었다. 김 군은 일주일에 딱 한 번 있는 체육시간에도 운동장에 나가지 않고 교실에 남아 수학문제를 풀었다.
주말마다 치르는 평가시험 성적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입소할 땐 반 하위권이었지만 개학을 앞둔 마지막 주 평가시험에선 주요과목 시험 평균 95점으로 상위권에 올랐다. 공부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방학 한 달 동안 스스로 학습계획을 세우고 공부한 내용을 충실히 복습하는 습관을 들인 김 군은 기숙학원에서 나온 뒤 ‘고등학교 배치고사 반 1등’이란 첫 번째 목표를 세웠다. “1등을 하면 친구들도, 선생님도 모두 나를 인정해 준다. 공부할 맛이 난다”는 기숙학원 친구의 말에 따라 최상위권을 목표로 잡은 것이다.
김 군은 집에 돌아와서도 학원에 있을 때처럼 스스로 정한 학습·생활계획표에 따라 움직였다. 하루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의 총합을 구한 뒤 80%는 학습에, 20%는 휴식 및 보충에 썼다.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시간을 미리 마련해 놓으니 계획 실천율은 100%에 가까웠다.
다잡은 생활습관도 이어 나갔다. ‘공부할 땐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올려놓지 않는다’ ‘TV는 절대 보지 않는다’ ‘컴퓨터로 온라인 강의를 들을 때도 게임이나 채팅은 하지 않는다’는 자기와의 약속을 지켰다.
김 군은 배치고사 일주일 전부턴 오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중학교 3학년 수학 전 범위, 고등학교에서 나눠준 시험 대비 책자(고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주요 작품 및 고교 필수 영어단어)를 달달 외울 만큼 공부했다. 결과는 전교 1등. 기숙학원 친구가 말했던 공부의 ‘참맛’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중3 겨울방학 한달 간 학습태도와 생활습관을 바꾸고 이를 꾸준히 실천한 김 군은 고1 땐 반 3등 안팎으로 성적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고2인 지금은 2학기 중간고사까지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모의고사 성적으론 전 영역 1등급으로 인문계 전교 1등을 유지하고 있는 김 군. 김 군의 책상머리엔 ‘서울대 철학과’란 뚜렷한 목표가 적혀 있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우리학교 공부스타’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중하위권에 머물다 자신만의 학습 노하우를 통해 상위권으로 도약한 학생들을 추천해 주십시오. 연락처 동아일보 교육법인 ㈜동아이지에듀. 02-362-5108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