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참사 희생 어르신들 욕되게 처신말자”
“정부-市 신속지원에 감사”
보상 문제도 차분히 대응
“며칠 동안은 경황이 없어 문상(問喪)해주신 분에게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16일 경북 경주시 현곡면 남사재에서 발생한 버스 추락사고로 부모를 잃은 유족들은 “삼우제와 49재가 남아 있지만 장례식을 제 날에 치른 데 대해 많은 분들께 고마운 마음”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유림마을 사람들은 예부터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 넘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마을 출신으로 경주에 사는 40, 50대 100여 명은 10년 전에 ‘유림마을 향우회’를 만들어 명절이면 어르신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봄가을에 경로잔치를 열었다. 향우회라면 보통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객지에 만들곤 하지만 이곳에선 말 그대로 고향 곁에서 고향 어른들을 더 잘 모시기 위해 만든 것이다.
언론에서 이번 사고를 ‘참사’나 ‘대형 재난’으로 표현할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지만 향우회원들은 ‘어떻게 하면 마을 어른들의 마지막 길을 편안하게 모실까’부터 생각했다고 한다. 사고로 숙모를 잃은 김창식 향우회장(53)은 기자에게 “우선 (문상객에게) 인사부터 대신 잘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정신이 없어서 문상해준 데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경주시와 경북도, 정부가 신속하게 여러 가지 지원을 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 밤 유족들은 유족대책위를 구성했다. 경주시는 합동분향소와 장례식장, 제물(祭物) 비용 등 6가지 요청을 받고 회의를 열어 즉시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상대방이 없는 단독교통사고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유족들은 슬픔을 삼키면서 장례를 준비하는 한편 차분하게 합동조사단 조사를 지켜봤다. 유족 일부에서는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절대로 고인들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 차분하게 수습하자”는 목소리에 묻혔다. 유족대책위 김창렬 간사(53)는 “어떤 경우에도 죽음을 놓고 흥정을 하는 듯한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차분하게 사태를 추스르는 것이 중요하지 대책위 이름으로 ‘일단 뭘 하고 보자’ 식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족들은 이번 사고 때 전국에서 보여준 관심에 대한 작은 보답으로 보험회사 측과 보상 문제가 마무리되는 대로 보상금의 일부라도 모아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자는 뜻을 모으고 있다. 전국에서 사고를 위로해준 데 대한 ‘예의’이고 보상 논의도 ‘법과 절차’에 따르면 된다는 분위기다.
유림마을 안국창 통장(60)은 “뭘 시끄럽게 해야 일을 잘하는 게 아니다”라며 “차분하게 마무리하고 이런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 노력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분향소를 찾았던 인사들 사이에서는 “‘망자에게 누가 되지나 않을까’부터 염려하는 절제된 태도에서 역시 천년 고도(古都) 경주의 자존심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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