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관 제대를 몇 개월 앞둔 황태석 씨(29·가명)는 이달 평소 희망하던 대로 자신의 출신 대학병원 피부과 레지던트 과정에 지원했다. 경쟁률이 3 대 1이 넘어 불안했지만 전공 선택을 바꾸기는 싫었다. 흉부외과 등 비인기과에 지원한 동기들이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면서 개업도 어렵고 종합병원에서 교수로 남는 사람은 극소수인 점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필기시험과 면접을 치렀지만 결국 이번 레지던트 전기모집에서 낙방하고만 황 씨. 추가모집에 외과 등에라도 지원하려다 한 해 더 준비해서 다시 시험을 보기로 했다.》
“원치 않는 과에 가기보다는 한 해 더 준비를 하는 게 낫다 싶더라고요.” 그는 검진센터나 요양병원 등의 일반의로 일하면서 내년 다시 응시할 계획이다. “일반의 월급이 병원에 따라 500만 원대에 이를 만큼 나쁘지 않지만 잠시 임시직으로 일해야 한다는 불안감은 있죠. 그래도 삼수를 하는 친구들도 있으니….”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는 김모 씨(27)는 일찌감치 재수를 결정했다. “2008년도 레지던트 모집 당시 성형외과에 지원을 했는데 바로 떨어졌죠. 고민하다 수료예정인 인턴과정을 일부러 중도에 포기하고는 그냥 군대에 왔습니다.” 인턴 성적과 필기시험, 면접 등으로 레지던트 심사가 이뤄지는데 이왕에 떨어졌으니 인턴 성적이라도 올리자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탈락한 남자 동기 중 절반 이상은 자신처럼 인턴 수료를 포기하고 군대에 왔다고 했다. “물론 제대를 하고 돌아가 힘든 인턴 생활을 다시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인턴 성적을 확실히 올려서 성형외과에 가야죠.”
12월 2일 마감한 2010년도 레지던트 전기모집에서 85명이 정원인 피부과에 134명, 95명이 정원인 성형외과에 130명이 지원하는 등 상대적으로 편하고 수입이 많은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이 여전히 인기를 모았다. 반면 외과는 305명 모집에 145명만 지원했다. 수입이 많은 전공으로의 ‘쏠림현상’이 여전한 가운데 인기전공을 선택하려고 재수하는 의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미달된 과에서의 추가 모집에 응하기보다는 아예 인기전공에 재도전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것. 이번 모집에서 146명 정원에 270명이 지원해 최고 지원율(184%)을 기록하는 등 새롭게 뜨고 있는 정신과에 지원한 한 인턴은 “예전에는 미리 해당과 과장들과 의논해 눈도장을 받거나 다른 전공을 노렸는데 이젠 성적이 모자라도 인기전공에 지원한다”며 “떨어져도 재도전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인턴을 앞둔 의대생이나 전문의들도 ‘재수하는 의사들’이 많은 현실에 공감하고 있다. 흉부외과 의사를 꿈꾸던 의학도도 병원에서 직접 의료수가와 열악한 근무환경을 경험하면 마음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 또 월급을 떠나 수련을 마친 뒤에도 대학병원에서 교수로 남지 않는 한 전공을 살리기 힘든 외과과목 등의 불확실성이 ‘재수’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박지연 사무국장은 “과거에도 인기 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몇 년간 ‘피안성’ 전공쏠림 현상이 심해지면서 재수를 감수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올해 정부의 지원으로 흉부외과 등 비인기과에서도 당근을 많이 내놓았는데 과연 이들 과가 추가모집에서 얼마나 많은 의사의 마음을 바꿀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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