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밖에 모르는 세상? 그들이 있어 따뜻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5일 03시 00분


지난 40년간 의사상자 576명… 20, 30대가 절반 넘어

뱃일 배우던 27세 양석원씨, 동료 구하려 검은 바다로…
동생 “하늘서도 남 돕겠죠”

고 양석원 씨는 지난해 한국자원봉사센터 소속 1365 중앙구조단 단원으로 태안 기름유출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사진 제공 고 양석원 씨 가족
고 양석원 씨는 지난해 한국자원봉사센터 소속 1365 중앙구조단 단원으로 태안 기름유출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사진 제공 고 양석원 씨 가족
전화벨이 울린다. 큰애의 음성이 들려올 것 같다. 양경종 씨(55·개인택시 운전사)는 이내 고개를 젓는다. 아들은 10개월 전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양 씨는 “산소에 비석까지 세웠지만 아직도 아들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가슴에 아들을 묻고 살기는 정말이지 버겁다.

2월 28일 오후 4시 40분쯤 경남 통영시 욕지도 남동쪽 35마일 해상. 근해유자망 어선 24t급 대양호 선원 정모 씨(48)가 어구를 던지다 그물에 발이 걸려 바다로 추락했다. 동료 선원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이 배에서 일한 지 9일밖에 안 된 양석원 씨(27)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석원 씨의 사투는 무위로 끝났고, 시커먼 바다는 2명을 삼켰다. 석원 씨는 양 씨의 큰아들이다.

당시 대학(제주산업정보대) 휴학 중이던 석원 씨는 세상 견문을 넓히고 싶다며 뱃일을 배우던 중이었다. 석원 씨는 해군 복무를 마친 후 복학을 미룬 채 서울로 올라가 응급구조사, 수상안전구조원, 방재안전관리사 자격증을 땄다. 한국자원봉사센터의 1365 중앙구조단에서도 활동했다. 재난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 2006년 1월에는 전북 정읍 폭설피해 현장에서 재난구조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제주시 애월읍 야산에 안장했다. 대대로 물려받은 땅이다. 아버지는 사무치도록 아들이 그리우면 산소를 찾는다. 행여 잡초가 산소를 덮을까 봐 조바심을 낸다. 그는 “녀석이 군대를 마친 다음 복학을 포기하고 서울로 가겠다고 했을 때 잡지 못한 게 두고두고 한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동생 호근 씨(25)는 “형은 하늘나라에서도 남을 위해 봉사하고 있을 것”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일상으로 돌아오겠지만 형의 의로운 정신만큼은 결코 잊혀선 안 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6월 살신성인의 용기와 행동을 몸소 보인 석원 씨를 의사자(義死者)로 선정하고 보상금을 지급했다. 석원 씨의 죽음은 제주도의회가 ‘제주도 의사상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의사상자 지원제도가 시작된 지 올해로 40년이 됐다. 1970년 처음 시행한 후 모두 576명의 의사상자가 인정을 받았다. 이 중 인적사항이 확인된 556명(의사자 385명, 의상자 171명)을 성별 연령별 지역별로 보면 의사상자는 주로 남성(528명·95%), 나이는 21∼30세(146명·26.3%), 직업은 학생(145명·26.1%), 지역적으로는 서울 거주자(107명·19.2%)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21∼30세에 이어 31∼40세(143명·25.7%)가 전체의 절반을 넘었으며 10대 청소년도 109명(19.6%)이나 됐다. 박난숙 복지부 사회서비스자원과 과장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요즘에 20, 30대 젊은이들이 의사상자의 과반수를 차지한다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에 정의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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