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공군기 종합병원”… ‘완치 테스트’ 목숨건 비행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5일 03시 00분


국내유일 정비창 시험비행조종사 임성규 소령

엔진재점화 -낙하산 성능 등 곡예비행하며 정밀 체크
부모님 걱정하실까봐 시험비행 사실 안알려

국내 유일의 정비창 시험비행조종사인 임성규 소령이 21일 점검을 마치고 시험비행만 남겨 놓은 K-5E 전투기 앞에서 오른손을 들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제공 공군 ☞ 사진 더 보기
국내 유일의 정비창 시험비행조종사인 임성규 소령이 21일 점검을 마치고 시험비행만 남겨 놓은 K-5E 전투기 앞에서 오른손을 들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제공 공군 ☞ 사진 더 보기
대구 공군비행장에 있는 제81정비창. 이곳은 공군 비행기가 정기적으로 종합 정밀점검을 받기 위해 가야 하는 일종의 ‘종합병원’이다.

28일 제81항공정비창 앞 활주로에선 깨끗이 단장한 F-5/E(제공호) 전투기 한 대가 하늘로 날아오를 예정이다. 9개월 동안의 정밀점검을 받은 뒤 현장 배치에 앞서 최종 시험비행을 하기 위해서다. 이 비행기의 조종간은 임성규 소령(35·공사 45기)이 잡는다. 임 소령은 국내 단 한 명뿐인 정비창 시험비행 조종사다. 정비를 마친 비행기는 반드시 임 소령을 거쳐야 출고된다.

임 소령이 이륙 준비부터 착륙까지 체크해야 하는 항목은 무려 80∼90가지. 1시간 동안 울산 앞바다를 비행하며 생명을 건 각종 테스트를 해야 하는 게 임 소령의 임무다. 임 소령은 이륙에 앞서 안전을 기원하는 자기만의 ‘의식’을 치른다. 비행기의 주요 부분을 손으로 툭툭 쳐가며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건넨다. 2007년 3월 항공사 승무원이었던 부인과 만나 결혼한 뒤 “가족을 위해서라도 안전을 꼭 지켜야 한다”는 다짐에서 생긴 버릇이라고 한다.

임 소령이 비행기에 올라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은 엔진 가동 여부다. 이어 조종간이 잘 움직이는지를 살펴본 뒤 이륙한다. 4만5000피트(13.7km) 상공까지 올라간 뒤에는 음속을 돌파해 마하 1.2 상태에서 기체의 이상 여부를 체크한다. 3만5000피트(10.7km) 상공으로 내려와서는 세 차례 마하 0.65 상태에서 엔진 이상 유무를 확인한다.

2만5000피트(7.6km) 상공에서 실시하는 테스트는 매번 임 소령을 긴장하게 한다. 비행도중 엔진을 껐다가 40초 만에 다시 켜는 시험이다. 비행도중 엔진이 꺼지는 경우가 있는 만큼 정지 후 다시 가동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항목별 테스트를 한 뒤 착륙할 때 드래그 슈트(drag chute·고속항공기가 착륙할 때 활주거리를 단축하기 위해 사용하는 낙하산)가 제대로 펴지는지 확인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시험비행은 끝난다.
대구에 위치한 제81항공정비창 작업장에서 정비사들이 종합점검을 받기 위해 입고된 K-5E(제공호) 비행기를 분해하고 있다. 정비사들은 비행기의 골격만 남기고 100% 분해해 ‘기골 안정성’을 점검한다. 사진 제공 공군
대구에 위치한 제81항공정비창 작업장에서 정비사들이 종합점검을 받기 위해 입고된 K-5E(제공호) 비행기를 분해하고 있다. 정비사들은 비행기의 골격만 남기고 100% 분해해 ‘기골 안정성’을 점검한다. 사진 제공 공군

“항상 불안감을 안고 시험비행을 합니다. 습관적으로 상승 중에 엔진이 꺼지면 어떻게 대처할까, 음속 돌파 때 캐노피(canopy·조종석 위의 투명한 덮개)가 떨어져 나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제 시험비행 도중 관제사와 통신이 완전히 두절된 적도 있었죠.”

임 소령은 “집사람이 작업장을 방문해 앙상한 기골만 남은 비행기를 보더니 눈물을 쏟아냈다”면서 “그 비행기를 조립한 뒤 첫 테스트 비행을 하는 사람이 남편이라는 사실에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부모님은 내가 시험비행 조종사라는 사실을 모르신다. 걱정하실까 봐 말씀을 안 드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임 소령은 지금까지 모두 1900시간을 비행한 베테랑 조종사다.

F-5전투기는 반드시 6년마다 제81정비창에 들어와 종합점검을 받도록 돼 있다. 비행기가 정비창에 들어오면 정비사들은 가장 먼저 비행기 엔진을 떼어낸다. 이어 분해 가능한 모든 부품을 떼어내 비행기는 결국 뼈대만 남는다. 각 부품과 몸체의 X선 사진을 400여 장 찍어 기골 안전성을 확인하고 다시 조립해 페인트를 새롭게 칠한 뒤 시험비행을 거쳐 출고한다. 비행기 한 대가 입고돼 출고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4개월 정도. 하지만 점검 도중에 문제가 발생해 보완이나 교체를 할 경우엔 시간이 더 걸린다.

“시험비행을 할 때 정비사들이 모두 활주로에 나와 이륙 장면을 지켜보는데, 그때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찌 보면 내 생명을 쥐고 있는 정비사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없다면 이 일을 할 수 없을 겁니다.”

임 소령은 “일선 조종사들이 내가 테스트해 보낸 항공기를 몰고 안전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28일 시험비행에 나설 F-5/E는 올해 제81정비창이 출고하는 마지막 비행기다. 제81정비창은 1985년부터 모두 2057대의 비행기를 대상으로 2734회의 시험비행을 실시했다. 올해까지 24년 무사고 시험비행 기록을 갖고 있다.

대구=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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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2-25 09:38:58

    아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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