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책상위의 ‘오빠’얼굴 보면 졸음 싹~ 힘이 나요”

  • Array
  • 입력 2009년 12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선생님이 교과서를 쭉 읽어주실 때나 수학공식의 증명과정을 칠판에 쭉 적으실 때 가만히 앉아있으면 졸음이 밀려와요. 그때 책상이나 교과서를 도화지 삼아 낙서를 하면 잠이 싹 가셔요. 일부러 손을 자꾸 움직이는 거죠. 가끔 수업이 지루할 때면 선생님 별명을 책상에 살짝 적어놓기도 하는데, 그게 잠을 쫓는 덴 특효에요. 재미있으니까요(웃음).”(이모 양·고2·대구 수성구)

중고교의 담벼락, 화장실 문, 책상 위엔 학생들이 써 놓은 낙서가 즐비하다. 특히 고등학교 교실엔 “2011학년도 ○○대 퀸은 바로 나!” “대학문은 좁지만 나는 날씬하다”처럼 목표대학이나 좌우명이 빼곡히 적힌 책상이 많다.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예민한 나이의 학생들에게 낙서는 ‘욕망’의 배출구요 ‘유희’의 통로. 요즘 중고교에선 어떤 낙서가 주를 이룰까?

먼저 책상 위. 이곳은 친구나 선생님이 볼 수 있는 공개된 자리인 만큼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좋은 취지의 낙서가 주를 이룬다. 친한 친구에게 격려의 말을 자기 책상 위에 써 달라고 요청하거나 자기의 개성을 살린 캐리커처(사람의 특징을 잡아 익살스럽게 표현한 그림)를 그려달라고 요구하는 학생도 있다. 낙서가 ‘표식’이 되다보니 같은 반 학생들은 청소를 하다 책상끼리 뒤섞이면 낙서로 책상 주인을 찾아 줄 정도.

‘학교 공공기물 손상 죄’로 선생님에게 야단맞지는 않을까? 고2 문모 양(18·서울 구로구 고척동)은 “답답하고 지루한 교실에서 이런 재미라도 없으면 무슨 맛으로 공부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문 양은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에게 부탁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2PM’ 멤버들의 얼굴을 책상 위에 그려달라고 했다. 문 양은 “공부가 무작정 하기 싫을 때, 집중이 안 될 때 책상 위에 그려진 오빠들의 얼굴을 보면 힘이 절로 난다”면서 “이 정도는 선생님들도 못 본 척하고 넘어가 주신다”고 말했다.

반면 선생님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교실 벽 귀퉁이나 화장실 문 안쪽엔 ‘폭로성’ 메시지가 대세. 평소 불만을 품었던 선생님에 대한 항의성 글이나 비난을 받을 만한 친구의 행동을 익명성 뒤에 숨어 공개하는 것이다.

‘○○선생님, 숙제 좀 그만 내주세요’처럼 공감 가는 화장실 문 낙서엔 ‘동감’ ‘이 낙서 선생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보내줘’ 같은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특히 화장실 낙서는 학교에 떠도는 각종 괴소문의 온상지. 주로 이성교제, 집단 따돌림처럼 매우 민감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혀있기도 한다.

고2 조모 군(18·경기 평택시)은 “화장실 문 위엔 ‘3학년 ○○○와 1학년 ○○○가 사귄다’ ‘누구와 누구가 삼각관계다’ ‘2학년 2반 ○○○의 몸무게는 ○○kg’처럼 당사자에겐 약점이 될 만한 내용이 많이 적혀 있다”면서 “몇 층 화장실에 이런 낙서가 써 있다는 말이 돌면 낙서 내용을 보기 위해 그 화장실에만 수십 명의 학생이 몰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고1 소모 양(17·서울 은평구 구산동)은 “처음 이성친구와 사귀기 시작할 땐 낙서에 이름이 공개된 당사자로선 은근히 기분 좋게도 느껴지지만 문제는 헤어지고 난 다음”이라며 “친한 친구가 남자친구랑 헤어져 이와 관련된 낙서들을 지우느라 물파스를 들고 온 학교 화장실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결국 낙서가 하도 많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