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엔 취업할 수 있을까요?" "우리아이 노총각 딱지 뗄 수 있을까요?" 2010년 1월 1일과 2일 찾은 서울 시내의 유명 점(占)집은 신년 운세를 보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들의 이야기에는 비록 부동산, 이직, 창업, 진학, 결혼, 자녀, 건강 등 세상의 다양한 근심이 담겨있었었지만 목소리 한 구석에서는 2010년 새해에 대한 기대감이 묻어났다.
2일 송파구 잠실에 위치한 S철학원을 나란히 찾은 부부 안 모씨(35·여)와 박 모씨(39)의 최대 관심사는 남편의 진로였다. 새해니만큼 역술인이 1월부터 12월까지 월별로 건강운, 이동수 등을 A4용지에 쭉 적어 내려가자 회사원인 남편 박씨는 "공부를 더 하는 게 좋을까요?" "작년에 사람문제로 힘들었는데 올해는 그런 것 없는 거죠?"라며 앞으로의 진로 및 직장 내 이동사항을 꼼꼼히 물었다. 공부를 더 하고 싶던 차에 자기개발 차원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지만 직장생활과의 병행 등으로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 자녀교육도 빠트릴 수 없는 문제. 현재 유치원생으로 2011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야하는 아이를 두고 사립 초등학교에 보낼지 일반 초등학교를 선택할지를 고민 중인 부부는 사립초교 추첨 운이 좋은지도 물었다. "사립초교에만 매달리지 말고 '안가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지원해야 돼요." 부부의 얼굴에 살짝 실망스러운 표정이 스쳐갔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사주카페에서도 '진로문제'가 단골질문이었다. 1일 마포구 홍대 인근 사주카페를 찾은 중학교 동창들은 취업운과 시험운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 중인 심모 씨(26)는 "34살 때 즈음에야 명예가 따른다"는 역술인의 말에 머리를 움켜쥐었다가 "올해는 공부운이 좀 따르니 2010년안에 꼭 결판을 지으라"는 말에야 제 얼굴을 되찾았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박모 씨(27)는 "공무원 시험이 잘 될까"라는 질문에 역술인이 "역마살이 있으니 유학을 가든지 공무원 중에서도 돌아다니는 직종에 도전하라"는 말에 곰곰이 고민에 잠겼다. 이들은 "다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서 갑갑한 마음에 이곳을 찾았다"라며 "새해인데 그래도 운이 나쁘진 않다니 힘이 난다"며 서로의 운세를 두고 수다를 꽃피웠다.
"언제쯤 안정적으로 일하게 될까요?" 데이트 코스 겸 사주카페를 찾은 연인도 '궁합'은 뒷전이었다. 1일 남자친구와 함께 사주카페를 찾은 A씨(27·여)는 다음주에 일본에 가는데 가서 성과가 있을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역술인이 남자친구와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 얘기를 하는 참에도 A씨는 다시 일본행에 대해 물었다. A씨의 남자친구 오 모씨(31)의 차례가 됐다. 오씨가 회사문제로 고민을 털어놓는 도중 여자친구 A가 물었다. "재복은 있어요?"
재테크나 부동산도 빼놓을 수 없는 주제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식이 낫냐, 부동산이 낫냐"라며 재테크 방향을 물었다. 평소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던 김모 씨(27)도 사주카페에서 "올해 부동산 투자가 좋다"는 말에 쾌재를 부르더니 "야산을 사두라"는 말에 눈을 반짝였다.
새해 점집을 찾은 사람들의 질문이라기엔 매우 구체적이고, 때론 절박하게 느껴졌던 질문들. 철학원에서 만난 역술인 S씨는 "경기가 침체되면 아무래도 개개인의 운도 침체되는 편"이라며 "부동산, 증권, 주식뿐 아니라 카지노를 가는데 일진 상담을 시간별로 한 사람이 있을 정도"라고 최근의 상황을 설명했다. 정암철학관의 백종헌 원장도 "부동산, 주식과 관련하여 돈을 벌 수 있겠느냐고 상담을 해 오는 사람들도 많고 최근 노처녀, 노총각들이 많아져 자식들이 결혼을 할 수 있겠느냐는 문의도 끊이질 않는다"라며 "외고 갈 수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들도 예전에 비해서는 조금 줄었으나 여전히 많이 있다"고 전했다.
점괘 하나하나에 시시각각 표정이 달라지던 이들은 점집을 나서며 설렘 반 두려움 반의 목소리로 말했다. "2010년은 그래도 조금 사정이 피지 않을까요? 또 열심히 달려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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