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에… 수지 안 맞아…
분만 산부인과 없는 시군구 6년새 27곳 → 47곳으로 늘어
정부, 인력-시설 지원 추진
강원 인제군에 살고 있는 임신 12주차의 김모 씨(30)는 속초에 있는 산부인과를 다닌다. 미시령터널을 지나 병원에 한 번 다녀오는 데 왕복 2시간은 걸린다. 좋은 병원을 찾아 일부러 먼 길을 선택한 게 아니다. 김 씨가 사는 곳 주변에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기 때문이다. 김 씨는 “산통이 시작되면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늘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김 씨가 살고 있는 인제군에서만 지난해 328명의 임신부가 아이를 낳았다. 인제군 면적은 1646.36km²로 서울의 2.7배다. 그러나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는 단 한 곳도 없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인제군처럼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한 곳도 없는 시군구는 2003년 27곳에서 2009년 상반기 47곳으로 74% 늘었다. 시도별로는 경북이 9곳, 경남이 8곳으로 가장 많았다.
47곳의 시군구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개원을 꺼리는 이른바 ‘산부인과 기피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분만 건수가 다른 지역보다 크게 적기 때문이다. 47곳 가운데 28곳이 연간 분만 건수가 200건을 넘지 못하고 있다. 경북 울릉군이 52건으로 가장 적었고 이어 경북 영양군(99건), 충남 청양군(116건), 충북 단양군(127건), 경북 청송군(143건) 순이었다.
연간 분만 건수가 1000여 건에 육박해도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는 곳도 많다. 전북 완주군이 대표적으로 지난해 분만 건수가 967건이었지만 하루 평균 2.65명의 임신부는 다른 지역으로 ‘원정’ 가서 아이를 낳았다. 경기 과천시(924건), 충남 부여군(642건), 경남 창녕군(487건), 전북 고창군(470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분만 건수가 많아도 산부인과 의사들이 개원을 꺼리는 이유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김인재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경남지회장은 “제왕절개를 하려 해도 마취과 전문의가 상시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런 분만 인프라를 지역 산부인과가 갖추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용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전북지회장은 “아이를 받으려면 오전과 오후, 밤에 각각 2명의 간호사가 상주해야 하는데 이들 인력을 구하기도 힘들고 구하더라도 인건비 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는 시군구에 살고 있는 임신부의 분만 건수는 지난해 1만2539건으로 전체 분만 건수의 2% 정도다. 인프라 부족 등으로 적지 않은 임신부가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나백주 건양대 보건학과 교수는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는 시군구의 산모들을 대상으로 임신합병증을 조사한 결과 다른 지역보다 임신성 고혈압으로 인한 간질 발작 발생 위험이 2배가 높았다”며 “병원이 멀리 있어 제대로 임신부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 먼저 나타났다. 2007년부터 일본에서는 분만시설이 없어 지바 현 등에서 도쿄로 원정출산을 오는 산모들을 ‘출산난민’이라고 부르고 있다. 나 교수는 “원거리 이동은 산모와 태아를 모두 위험하게 할 수 있으므로 이들 지역 ‘출산난민’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산부인과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추진 중이다. 우선 분만 건수가 많은데도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에는 기존 산부인과가 분만실을 갖출 수 있도록 인력과 시설비용을 지원키로 했다. 또 분만 건수가 적어 병원이 들어서기 힘든 지역에는 임신부들의 이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24시간 긴급 이송시스템을 마련할 방침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진료 수가도 인상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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