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신미 있어… 이젠 웃을 수 있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4일 03시 00분


은행 취업문 열어준 ‘청년인턴’… 창업 불씨 되살려준 ‘신보대출’… 두부기계 돌게해줄 ‘미소금융’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재개발지역. 반가운 손님들이 도착한다는 전화에 문순덕 씨(56·여)는 외투도 걸치지 않고 집 밖으로 나와 손님을 기다렸다. 영하로 떨어진 추위에 빨갛게 언 손을 비비며 문 씨가 맞은 손님은 우리미소금융재단 직원 2명. 저소득층 무담보 신용대출인 미소금융 신청자들 중 서류심사를 통과한 이들에 대해 처음으로 현장심사에 나섰다. 500만 원 대출을 신청한 문 씨는 재단 직원들을 안방 아랫목으로 끌어 앉히고는 연방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것(500만 원)만 있으면 저희 가족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장사 잘해서 대출금도 빨리 갚을 자신이 있어요.”》

○ 청년인턴 제도 덕에…
3년간 50곳 두드렸지만 허사, 암투병 어머니께 ‘취업’ 선물

○ 신용보증 대출 덕에…
전재산 쏟아 한방화장품 개발, 자살 생각하던 내가 사장으로

○ 미소금융 덕에…
기계 재가동 위해 융자 신청, 두부 만들 생각하면 희망 불끈

서민에게 힘들지 않은 해는 없지만 2009년은 더 고단한 한 해였다. 금융위기의 한파는 저소득층과 영세 자영업자, 취업 준비생들에게 큰 타격을 줬다.

하지만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경인년 새해를 맞아 다시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저소득층의 자활을 위해 마련된 미소금융과 영세 자영업자 대상의 각종 신용보증대출, 취업난 해소를 위해 도입된 청년인턴 제도는 위기의 수렁에서 빠져나와 재기하려는 이들에게 ‘희망의 동아줄’이 되고 있다.

○ 미소금융 500만 원으로 지핀 희망

10여 년 전 농산물 도매사업에 뛰어든 남편을 따라 상경한 문 씨는 남편의 사업 실패로 2004년부터 집에서 두부를 만들어 팔아 왔다. 하루에 두부 15모가량을 만들어 팔아 얻는 수입은 4만5000원 정도. 재료값을 제하면 한 달을 꼬박 일해 80만 원 정도를 쥘 수 있었다.

하지만 믹서와 가스레인지가 고장 나면서 문 씨는 4개월째 두부를 만들지 못했다. 미리 사놓은 콩 100kg이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고장 난 기계를 고치는 데 100만 원가량이 필요하다는 말에 두부 만들기를 포기해 버린 것. 문 씨는 이후 한 달에 몇 차례 나가는 일용직 파출부로 남편과 중학교 3학년생 딸을 부양했다.

문 씨가 미소금융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지난해 10월경. 그는 우리미소금융이 개소한 첫날인 지난해 12월 17일 2시간 넘게 기다려 대출신청서를 냈다. 이날 현장심사를 마친 우리미소금융재단은 이달 초 최종 심사를 통해 대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대출을 받으면 뭘 하겠느냐’는 재단 직원의 질문에 문 씨는 “두부 기계부터 새로 장만하겠다”며 미리 점찍어둔 기계들의 장단점을 줄줄이 쏟아냈다. 그는 새 기계를 장만하면 하루 두부 생산량을 100모까지 늘릴 계획이다. 미소금융을 신청한 뒤 꾸준히 발품을 팔아 60∼70명의 단골로부터 ‘두부를 구입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놓았다. 문 씨는 “이 지역이 재개발돼 전셋집에서 쫓겨나기 전에 작은 두부가게를 마련하는 것이 꿈”이라며 “돈을 벌면 고기를 못 씹는 남편을 치과부터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 자영업자 지원 프로그램으로 창업 성공

“다음 주부터 바로 납품할 수 있게 준비해 주세요.”

한방 화장품 제조회사인 ‘자연사랑 사람사랑’ 김희윤 대표(54·여)는 새해를 이틀 앞둔 지난해 12월 30일 밤늦도록 사무실을 나서지 못했다. 화장품을 납품받길 원하는 피부미용실 원장 2명과 납품 일정을 조정해야 했던 탓이다. 지난해 10월부터 화장품 판매에 들어간 이 회사는 두 달 만에 벌써 11개의 피부미용실과 납품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불과 반년 전만 해도 김 대표의 사업은 암울하기만 했다. 남편과 사별한 뒤 은(銀) 공예사로 일했던 김 대표가 화장품 개발에 나선 것은 7년 전. 그러나 서울 강남의 아파트까지 팔아 전 재산을 화장품 개발에 쏟아 부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글로벌 경제위기였다. 지난해 3월 화장품 개발을 마무리하고도 투자 유치 실패에 따른 자금 부족으로 정작 창업은 하지 못하게 됐다.

김 대표는 “수중에 몇천 원이 없어 생계를 걱정하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우울증까지 걸렸다”며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새벽에 목욕탕 청소 아르바이트에 나선 것을 보고는 자살을 떠올렸을 정도”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희망의 불씨를 되살린 것은 지인으로부터 신용보증재단의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소개받으면서부터다. 그는 신용보증재단으로부터 3000만 원의 자영업자 유동성지원 특례보증을 받아 창업에 성공했다. 김 대표의 올해 매출 목표는 월 5000만 원. 지난해 12월 매출액이 3000만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리 어려운 목표는 아니다. 김 대표는 “창업 실패로 좌절했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2010년은 정말 꿈같은 해가 될 것 같다”며 “기회가 된다면 창업에 어려움을 겪는 주부들을 돕는 일에도 나서보고 싶다”고 말했다.

○ “취업 삼수생 딱지 벗고 든든한 가장 될래요”

하나은행 경기 안산 반월공단지점의 신입 행원 이춘화 씨(26·여)는 지난해 4월 취업 삼수 끝에 은행 입사에 성공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수학과를 졸업한 이 씨가 지난 3년간 지원서를 낸 금융회사만 50여 개. 대학 3학년 때부터 일찌감치 금융권으로 진로를 정하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취업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특히 대학 3학년 때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은 데 이어 이듬해 아버지가 사고로 숨지면서 졸지에 가장이 된 이 씨에게 ‘취업 삼수생’이란 딱지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주변의 따가운 눈총에 힘겨워하던 이 씨는 지난해 3월 마지막 도전이란 각오로 청년인턴 제도에 참여했다. 하나은행 경기 안양중앙지점에서 고객 안내를 맡은 그는 고객들의 상담 내용을 기억해 창구 직원들에게 알려주는 등 남다른 노력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결국 하나은행의 행원 공채에 합격했다.

이 씨는 지난해 12월 26일 새해를 앞두고 동생과 함께 아버지의 묘소를 찾았다. 이 씨의 동생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 씨는 “새해엔 아버지처럼 든든한 가장이 되겠다고 약속했다”며 “그토록 원했던 은행에 입사한 만큼 열심히 실력을 키워 최고의 프라이빗뱅커(PB)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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