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합차 있다고 기초수급 퇴짜” 대통령 울린 단칸방 모녀, 그 뒤 1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7일 03시 00분


“월 70만원으로도 그저 행복합니다”
임대주택에 새 보금자리… 자활근로사업으로 월급도
11세 딸 학급서 회장 맡아… “요즘도 대통령과 편지 교환”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제공한 인천 남동구 구월2동 다세대 임대주택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김옥례 씨가 5일 각종 글짓기 대회에서 딸이 받은 상장을 가리키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의 올해 소망은 운전사로 취직하는 것이다. 인천=황금천 기자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제공한 인천 남동구 구월2동 다세대 임대주택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김옥례 씨가 5일 각종 글짓기 대회에서 딸이 받은 상장을 가리키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의 올해 소망은 운전사로 취직하는 것이다. 인천=황금천 기자
“따뜻한 집에서 딸과 함께 끼니 걱정 없이 살고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얼마 안 되는 수입이지만 딸을 위해 올해부터는 조금씩 저축을 하려고 합니다.”

5일 인천 남동구 구월2동의 한 다세대주택 1층.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김옥례 씨(53)와 초등학교 4학년생인 그의 딸 김모 양(11)이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김 양은 지난해 1월 16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대통령 할아버지께’로 시작하는 편지에는 ‘관절염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데 낡은 승합차를 갖고 있어 정부의 기초생활수급자 지원 대상에서 탈락해 생계가 막막하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 있었다.

편지를 받은 이 대통령은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김 씨 모녀의 사연을 소개한 뒤 “신빈곤층의 사각지대가 많은 것 같다”며 대책을 주문했다. 같은 해 2월 김 씨는 승합차를 처분해 국민기초생활수급자가 됐고, 월세가 밀린 지하 단칸방에서 벗어나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원하는 다세대 임대주택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몄다.

1년이 흐른 지금 김 씨 모녀의 생활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45m² 크기에 2개의 방과 거실, 화장실이 딸린 주택 내부의 살림살이는 1년 전과 다름이 없었다. 안방에 들어가 보니 철제 앵글에 매트리스를 깔아 만든 초라한 침대도 그대로 놓여 있었다.

본보 2009년 2월 6일자 A6면
본보 2009년 2월 6일자 A6면
그러나 이들의 얼굴에서는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던 당시 삶의 어두운 그늘이 말끔하게 걷혀 있었다. 심한 관절염을 앓고 있어 수년째 직장을 구하지 못해 주위의 도움을 받아 살아왔던 김 씨는 그동안 자활근로사업에 참여해 월급을 받았다. 동네 노인정에 일주일에 네 번 나가 청소와 급식도우미로 일하고, 국민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는 생활보조금을 합쳐 한 달에 70여만 원으로 딸과 함께 생계를 꾸렸다.

3월부터 다시 자활근로사업에 참가하는 김 씨의 새해 소망은 하루빨리 안정된 직업을 구해 딸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고,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는 “사회복지시설의 승합차 운전사로 취직하고 싶어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며 “생활형편이 조금 더 나아지면 중학교 진학을 앞둔 딸을 영어학원에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김 씨 모녀의 사연이 언론에 소개된 직후 여러 곳에서 “도와주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실제로 이들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1년 사이에 키가 10cm 이상 웃자란 김 양은 학급의 회장을 맡아 모범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김 씨가 책을 사줄 형편이 되지 않아 주로 이웃에 사는 상급생 언니가 쓰던 참고서와 문제집을 얻어 보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보지만 학급에서 1, 2등을 놓치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는 각종 글짓기 대회에 나가 11차례나 입상했다.

김 양은 여전히 이 대통령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다. 지난해 어린이날 이 대통령이 청와대에 김 양을 초청했지만 갑자기 심한 복통을 일으켜 만날 기회를 놓쳤다. 이 대통령은 사흘 뒤 ‘다음에 꼭 만날 수 있기 바란다’는 편지를 친필로 써 김 양에게 보냈다. 김 양은 지난해 12월 성탄절을 앞두고 이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엄마와 함께 살 수 있는 아늑한 보금자리가 생겨 행복합니다. 대통령 할아버지께 머리 숙여 감사드려요’라고 적었다. 이 대통령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라는 연하장을 보내 화답했다.

지난해 어머니가 일자리를 갖게 되면 자장면과 통닭을 실컷 먹어 보고 싶다고 했던 김 양에게 올해 소망을 묻자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휴대전화를 갖고 싶어요∼.”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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