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57)는 의상을 전공한 아들의 제안으로 2007년 4월 전 재산을 털어 의류 유통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매출은 신통치 않았고 사채를 빌려 운영자금을 대다 2008년 10월 가게 문을 닫게 됐다. 당시 A 씨의 빚은 7400만여 원.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돌려 막기도 어려워지자 A 씨는 지난해 2월 “빚을 면책 받고 싶다”며 서울중앙지법에 개인파산 및 면책을 신청했다.
법원은 4개월 뒤 A 씨에 대해 파산선고를 내렸지만 채권자인 국민은행은 법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A 씨의 씀씀이가 수상하다는 이유에서다. 조사 결과 A 씨는 2008년 4월 이미 지급불능 상태에 이르렀는데도 같은 해 7월 호프집에서 400만 원, 성형외과에서 210만 원을 카드로 결제하는 등 흥청망청 카드를 써 카드 연체금액만 1000만 원이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은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11월 말 “A 씨의 빚을 면책해줄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A 씨가 파산 신청을 하기 전에 이미 지급불능 상태였음에도 파산할 위험이 없는 것처럼 속이기 위해 거액의 신용거래를 한 점은 면책불허 사유가 된다”고 밝혔다.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로 개인파산 신청이 늘고 있다. 하지만 A 씨처럼 부정직하게 파산 신청을 하거나, 심지어 재산을 숨긴 뒤 빚을 탕감 받으려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진 파산 신청도 덩달아 늘어 법원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담보나 보증 없이 낮은 금리로 사업자금을 빌려주는 ‘미소 금융(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이 출범하면서 돈을 빌린 뒤 갚지 않는 ‘배 째라 식’ 파산 신청까지 몰리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국내 최대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은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새해부터 파산 신청을 엄격히 심사하기로 했다. 우선 파산 신청을 심사하는 ‘개인파산관재인’을 2배가량 늘릴 계획이다. 변호사들로 구성된 파산관재인은 채무자의 재산과 소득에 대해 검증하고 면책불허 사유를 재판부에 보고하는 업무를 맡는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 소속된 파산관재인은 22명. 몇몇 파산관재인은 변호사 업무에 치중해 파산 사건을 방치하고 있는 데다, 일부 우수한 파산관재인은 1인당 100건 넘게 맡고 있어 신속하고 충실한 심사가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법원은 1년간 파산관재인을 평가한 뒤 매년 10%를 퇴출하고 새로 충원하는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아울러 파산관재인이 선임된 사건만 전담하는 2개 재판부를 신설할 방침이다. 법원은 또 회사의 파산이 급증함에 따라 이달 안에 법인파산관재인만 따로 30명을 선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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