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지역 지정’ 2주만에 구제역이라니…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7일 21시 09분


지난해 12월 28일 우리나라는 미국으로부터 "내년 1월 12월부터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인정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정을 요청한 지 2년 7개월만이었다. 당시 농림수산식품부는 "청정국 지위 획득은 국내 축산물 위생관리 시스템이 미국과 동등한 수준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환호했다.

하지만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경기 포천군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7일 농식품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 관계자는 "방역에 최선을 다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구제역 발병으로 육류 수출이 전면 중단되고 국내 육류 소비가 줄어드는 악영향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왜 발병했나

직접 접촉은 물론 물과 공기로도 전파되는 구제역은 너무 춥거나 더우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국내에서 발생한 시점도 각각 3월(2000년), 5월(2002년)이었다. 왜 이번엔 한겨울에, 그것도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점에 발병했을까. 농식품부 이창범 축산정책관은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능성을 두고 정밀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발병 시기는 바이러스 타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수의학과 이영순 교수는 방역 미흡으로 인해 외국에서 구제역이 전파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교수는 "중국 동남아 등 우리나라를 둘러싼 나라들에서 한 해도 빠짐없이 구제역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 지역을 왕래하는 사람이 과거에 비해 늘어났지만 방역 시스템은 크게 향상되지 않아 이번에 구제역이 발생했을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

얼마나 확산될까

이날 발생 농장으로부터 반경 500m 안에 있는 모든 우제류를 도살 처분을 시작한 농식품부는 상황이 악화되면 경계지역(반경 3~10㎞)에 있는 9만7000여 마리도 도살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발생 농장은 젖소의 설사병으로 인해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이동중지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며 "직접적인 접촉으로 인한 전파는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인근 지역도 계속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제역 바이러스는 매우 빠르게 전파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농식품부는 이번 파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걱정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과거 두 번의 경우만 봐도 확산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조기에 소멸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2000년에는 22일, 2002년에는 52일 동안 구제역이 발생했다. 농식품부는 "더 이상의 확산을 막기 위해 발생지역을 방문하지 말고 축산농가는 소독을 철저히 하고 의심 상황이 발생할 경우 즉시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번 발병으로 인한 경제적인 피해는 최소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우선 도살 처분 보상금, 가축수매지원, 방역작업 등에 최소 1000억 원 가량의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또 사실상 올해 육류 해외 수출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최소 2200만 달러(약 297억 원, 지난해 수출액 기준)의 가량의 손실이 불가피하게 됐다.

인체에는 무해

구제역은 가축에 발병시 치사율이 최대 55%에 달할 정도로 강력한 질병이지만 사람에게는 감염되지 않는다. 설사 구제역에 걸렸던 소의 고기를 먹더라도 인체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 이번에 발견된 구제역 발병 가축들은 모두 도살해 땅에 묻었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불안심리로 인해 국내 육류 소비가 줄어들까봐 걱정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해외 수출이 중단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국내 소비까지 위축되면 축산농가는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며 "국민들께서는 불안해하지 말고 정부를 믿고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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