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환자들이 마지막 순간에 찾는 임종실에 앉은 허윤정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실 팀장은 “환자들을 보내면서도 좀처럼 죽음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9일 김옥경 할머니(78)가 인공호흡기를 뗀 지 200일이 됐다. 김 할머니는 당초 사흘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새해를 맞으며 가족들과 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몸속 장기들이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상태가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다”며 “연말 위기를 겨우 넘겼지만 1, 2월이 또 한 번의 고비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의료진들은 신정 연휴 때도 ‘병원에서 1시간 거리’를 유지하며 대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할머니는 ‘존엄한 죽음’이라는 화두를 한국 사회에 던졌고 파장은 컸다. 그동안 우리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6, 7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실을 찾아봤다.》
“환자 투병의지 꺾일라” 의료진-가족들 쉬쉬 통증완화-심리치료도 못해
“그럼, 집사람이 죽는다는 말입니까.”
위암 말기에 들어선 한수진 씨(가명·49)의 남편은 6일 허윤정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실 팀장의 방문에 몹시 당황한 기색이었다. 한 씨의 주치의는 호스피스실에 완화치료를 의뢰했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투병 의지가 약해질 수 있다며 이를 거부했다. 한 씨는 지난해 위암이 완치됐다는 판정을 받았으나 재발했다. 남편은 “아내가 이번에도 병이 나아 같이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허 팀장은 “환자나 보호자나 죽음에 직면하는 것을 굉장히 고통스러워한다”며 “투병 초기부터 통증 완화 치료나 심리적 지지를 해 주는 것이 필요한데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연명치료 중단을 선택하려면 환자가 스스로 죽음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남은 삶을 정리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죽음’은 금기시된 단어다.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실에는 13명의 환자가 있지만 죽음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3명뿐이었다.
의사는 치료 중단으로 받아들여질 것을, 보호자는 투병 의지가 약해질 것을 우려해 환자에게 알리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이 지난해 10월 의사 51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환자가 말기라는 진단을 직접 듣고 연명 치료 중단 동의서를 쓰게 될 확률은 5.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방암으로 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김순영 할머니(가명·79) 역시 말기 진단 사실을 모르고 있다. 김 할머니는 “내가 갈 때가 됐나봐”라면서도 “자식, 손자들과 얘기를 하고 싶은데 힘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눈물을 비쳤다. 서경주 호스피스실 간호사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환자는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도 못한 채 떠나게 된다”고 말했다.
윤영호 국립암센터 삶의 질 향상 클리닉 박사는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이라는 연명 치료 중단의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먼저 환자에게 말기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릴 것인지, 말기 진료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의료 현장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삶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려면 호스피스 완화 의료가 활성화돼야 하지만 아직까지 이에 대해 건강보험 수가가 적용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올해부터 8개 기관에 한해 수가 적용 시범사업이 시작됐지만 대부분 대형병원의 호스피스실은 자체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존엄한 죽음’의 방법을 물었던 김 할머니는 우리가 ‘존엄한 죽음’을 수용할 자세가 돼 있는지 다시 한 번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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