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들고 간 막대 온도계의 수은주는 영상 6도를 가리켰다. 14일 오후 4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김수복 씨(60)의 방 안이었다. 영등포역 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2, 3층의 노후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른바 ‘쪽방촌’이 있다. 그중 한 벽돌집에 3.3m²(1평) 남짓한 김 씨의 방이 있다. 방과 방 사이의 벽은 얇은 합판이다. 이 쪽방촌에 500여 가구가 산다.
“춥지 않으세요?” 민망한 질문이었다. 기자의 입에서 허연 입김이 나왔다. “잘 때는 문을 바짝 당겨서 자물쇠를 걸어야 해. 그래야 덜 춥지.”
솜잠바 안에 내복 상하의와 T셔츠, 니트, 솜바지를 껴입고 양말 2개를 겹쳐 신은 채 이불까지 뒤집어쓴 김 씨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몇 마디를 나누는 동안에도 칼바람이 들어왔다. 연탄보일러가 설치돼 있지만 외풍이 심해 김 씨는 매일 잠을 설치고 있다.
김 씨는 7세 때 보육원에 가 그곳에서 18세까지 살았다. 학교를 다닌 적이 없어 글을 읽을 줄 모른다. 막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김 씨는 2003년 겨울 동상으로 왼발의 발가락 모두와 오른발의 절반 정도를 잘라내야 했다. 청계천 굴다리를 기어 다니며 구걸을 하고 영등포역에서 노숙을 하다가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장애 판정과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얻었다. “그냥 이불 속에 앉아 있어. 아무것도 안 해. 이렇게 추우면 잘라낸 발쪽이 더 가려워.”
역시 노숙을 하다 지난해 7월 이곳에 온 조규선 씨(54)는 밤에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 두 장을 덮는다. 이웃에 사는 이선희 할머니(70)는 내복을 4개 껴입고 낮에는 햇볕이 들어오는 복도에서 몸을 녹인다고 했다.
강남구 개포동의 비닐하우스촌도 6년 만의 한파로 주민들 고생이 심했다. 이곳에 사는 황인기 씨(64)는 지난해 10월부터 전기가 공급돼 반가운 마음에 전기장판을 썼다가 12월 전기요금이 9만6000원이 나오자 그마저도 가끔만 쓰고 있다.
김형옥 영등포 쪽방상담소장은 “최근 추위가 유난히 심해 주민들의 고생이 많다. 근본적인 주거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며 “정부의 매입 임대 정책이 있지만 영등포 지역에는 입주할 주택이 적고 1인가구가 많은 쪽방 주민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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