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의 내 아이들아, 너희를 위해 할수 있는게 기도밖에 없다니…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6일 03시 00분


“살아 있어줘 제발 견뎌내”
배우 예지원씨, 결연아동들 연락안돼 애태워
3개국 아동 5명 남몰래 후원… “지구촌 함께 지원 나서야”

15일 배우 예지원 씨가 결연한 아이티 소녀의 편지를 읽으며 무사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15일 배우 예지원 씨가 결연한 아이티 소녀의 편지를 읽으며 무사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얘들아, 어디 있니? 고통스럽겠지만 꼭 견뎌내야 해. 부디 살아서 우리 다시 만나자.”

영화배우 예지원 씨는 최근 아이티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차인표 신애라 씨 등 연예인들과 함께 국제 구호단체 컴패션의 일원으로서 아이티를 방문했을 때 결연한 두 명의 아이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1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컴패션하우스를 찾은 예 씨는 컴패션 본부 측에 아이들의 생사확인을 요청했으나 “현지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말밖에 들을 수 없었다. 그는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찍은 흑인 소녀 마리 로데스 스테이시 양(7)의 사진과 프레드슨 게리내 군(8)이 보내온 편지를 어루만지며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난해 3월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한 예 씨의 눈에 우선 들어온 건 벌거숭이가 된 황량한 산이었다. 전 국민의 70%가 실업자이며, 절반 이상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아이티는 사람들만 말라 있는 게 아니었다. 땅도 메말라 있고, 풀도 말라 죽었고, 소도 개도 모두 비쩍 말라 있었다. 아이들은 더러운 진흙에 버터와 소금을 넣어 만든 진흙 쿠키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교회에서 한 아이를 품에 안았어요. 그 아기가 저를 보는데 눈빛이 마치 80세 노인 같았어요.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인생을 다 산 아기 같았죠. 그 눈빛을 보고 나선 도저히 그대로 떠날 수가 없더라고요.”

예 씨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 아이티에 사는 어린이 두 명과 필리핀, 케냐에 있는 아이들 등 총 5명에게 매달 양육비(각 3만5000원)를 후원해왔다. 컴패션 아이티 지부는 후원자들의 기부금으로 아이들에게 식량과 옷, 의약품을 지원해주고 학교 공부도 시켜주고 있다. 그는 두세 달에 한 번씩 아이들과 편지와 사진을 주고받으며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에 감동을 느꼈다.

“안녕하세요. 예지원 누나. 저는 엄마가 배 사고로 돌아가셔서 아빠랑 살고 있어요. 저를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게리내)

“우리 아버지는 막노동을 하시는데 일거리가 많이 없어요. 저는 집에서 청소와 물을 길어 나르는 일을 맡아서 해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요.”(스테이시)

예 씨는 이날 아이들이 지난해 말에 보내온 편지를 다시 꺼내 보며 이것이 마지막 편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에 눈물을 글썽였다. 예 씨는 “우리는 대참사로 수만 명이 숨져야만 지구촌 이웃에게 관심을 갖는다”며 “평소에도 조금씩만 눈을 돌려보면 우리가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 삶을 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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