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아저씨가 날 유괴하려 해요” 집 열쇠의 비상버튼 누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9일 03시 00분


CCTV는 찍고… 사이렌 울고
가족-경찰서에 실시간 ‘SOS’
■ 아파트, 유비쿼터스와 만나 첨단 보안
현관벨 누른 사람 얼굴 촬영
집 안에서 단지 모든 곳 관찰
일직선 등굣길-담장 제거 등
사각지대 없게 시설 설계

유괴범이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를 유인하거나 강제로 끌고 가려 한다면…. 이럴 때 어린이는 아파트 현관문을 열 때 사용하는 첨단열쇠(U-KEY)의 비상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라 단지 내 곳곳에 설치된 수백 대의 폐쇄회로(CC)TV 가운데 현장 주변의 CCTV들이 자동으로 어린이가 있는 곳을 찍기 시작하고, 이 장면은 집 안의 모니터를 통해 가족에게 송출된다. 동시에 경비업체와 관할 경찰서에도 전송된다. CCTV 옆에 부착된 확성기에서 경찰 사이렌이 울리면서 “어린이를 위협하는 용의자는 지금 당장 행위를 중단하라”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요즘 현대건설이 전국에서 분양 중인 힐 스테이트 아파트는 ‘단지 내 범죄율 제로(Crime Free)’를 목표로 이런 방식의 위치추적 시스템을 도입했다. 경기도시공사가 경기 김포 한강신도시에서 분양하는 아파트 역시 비슷한 장치를 설치했다.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아파트 보안시설이 첨단화, 지능화되고 있다. 최근 분양 중인 아파트들은 건물 내부를 비롯한 단지 내 어디서나 입주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유비쿼터스형 보안 아파트’가 대세다.

일부 건설회사는 입주자가 차를 몰고 주차장에 들어서면 컴퓨터가 집 안에 있는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는 주차위치정보시스템도 도입했다. 차가 주차장에 진입하면 엘리베이터가 자동으로 지하주차장까지 내려온다. 집 안에서는 남편이 아내가 차를 주차시킨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까지 오는 장면을 모니터를 통해 지켜볼 수 있다. 또 컴퓨터가 현관 벨을 누른 사람의 얼굴을 촬영해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에 누가 다녀갔는지 저장해 둔다.

경기 고양시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사건 등 최근의 아파트 단지 내 범죄가 건물 현관이나 엘리베이터, 계단 등 CCTV 감시가 미치지 못하는 지점에서 자주 발생한 점을 감안해 방범의 사각지대를 없앤 것이다. 현대건설 주택사업본부 최민우 차장은 “예전의 아파트 보안시스템은 범죄가 일어난 뒤에 범인을 잡기 위한 증거물로 이용되는 데 불과했다”며 “범죄 예방에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요즘은 경비실은 물론 집에서도 입주자가 단지 내의 보고 싶은 모든 지점을 직접 볼 수 있게 보안시스템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단지를 설계할 때부터 범죄 예방 효과를 염두에 두는 셉테드(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개념도 일부 아파트에 도입되고 있다. 잠재적 범인들이 범죄를 생각조차 하기 어렵도록 단지 내 주요 시설물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아파트의 동과 동 사이, 지하주차장, 놀이터 등 인적이 드물거나 범죄 위험이 큰 곳은 조명을 더욱 밝게 하고, 배관을 타고 건물을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창문의 위치는 배관과 멀리 떨어뜨린다. 범죄의 표적이 될 확률이 높은 1층은 아예 없애 주거공간이 아닌 통로로만 활용하기도 한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아파트는 단독주택과 달리 한곳에 여러 가구가 살고 있어 위험이 집중되고 공유된다는 문제가 있다”며 “셉테드를 통해 범죄 예방의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방식은 2012년 완공되는 광교신도시와 한강신도시 등 수도권의 대규모 택지에도 도입됐다. 경기도시공사 이계선 광교사업본부장은 “어린이들이 등하굣길에 범죄에 노출되는 일이 없도록 시야 확보를 위해 길을 일직선으로 설계했고 단지 내 담장도 없앴다”고 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박서윤 인턴기자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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