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드디어 찾았다.” 아직 바닷물이 차가운 2008년 5월 충남 태안군의 한 해변. 잠수복을 입은 한 남자가 물속에서 불쑥 나오며 외쳤다. 활짝 웃는 그의 한 손에는 담뱃갑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조개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 남자가 발견한 것은 한국에서만 사는 고유종인 장수삿갓조개. 멸종위기 Ⅱ급에 오른 귀한 몸이다. 패각 밖으로 흰 조갯살이 레이스처럼 삐져나온 독특한 모습의 이 조개는 1988년 서해 횡견도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2007년까지 약 20년 동안 불과 3개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다.
○ 생태조사 통해 멸종위기 조개 발견
조개를 발견한 주인공은 국립공원연구원 유류오염연구센터에서 일하는 서승직 연구원. 그는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태안해안국립공원 자연자원 정밀조사에 참여하고 있다.
검은 기름이 해안을 뒤덮은 이후 태안 앞바다의 생태계가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게 그의 일이다. 조사 과정은 간단치 않다. 바닷속이나 해변을 훑으며 50cm×50cm의 바둑판 모양으로 일일이 사진을 찍은 뒤 단위 면적 내의 생물 군집을 분석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생물종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요구하는 일이다. 작년 9월 소중한 동료 3명을 익사 사고로 잃었을 정도로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서 연구원은 아직 기름의 흔적이 남아있는 바닷속에서 희귀생물인 장수삿갓조개를 찾으려 했다. 자신의 스승인 최병래 전 성균관대 생물학과 교수가 1988년 처음 발견해 이름을 붙인 이 조개의 서식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것. 최 교수는 지금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져 와병 중이다.
“물에 빠뜨린 줄자를 꺼내려 다시 잠수하는 순간 레이스가 달린 모양의 조개가 보이더군요. 눈물이 울컥 날 정도로 기뻤습니다.”
서 연구원은 이후 2008년 6개, 작년 8개의 장수삿갓조개를 발견했다. 그는 이 발견으로 값진 성과를 얻어냈다. 장수삿갓조개는 한국 고유종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학계에선 완전히 새로운 종(신종·新種)으로 대접 받지 못했다. 일본 고유종에 딸린 일종의 아류인 신아종(新亞種)에 머문다.
서 연구원의 스승인 최 교수는 이 조개의 학명(學名)에 자신의 스승이자 동물분류학의 거장인 김훈수 전 서울대 교수의 이름을 따 ‘훈수이(hoonsooi)’라는 단어를 넣었다. 장수삿갓조개를 한국의 생물자원으로 확보하는 데 스승과 제자로 이어진 3대가 인연을 맺고 있는 셈이다.
○ 생물자원 지키는 생태조사
국내에선 전국의 20개 국립공원과 생태경관보전지역, 습지보호지역, 특정 도서지역을 중심으로 생태 모니터링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활동을 통해 국내 생태계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종을 발견하거나 멸종위기 종을 보전하기도 한다.
현장을 누비는 생태조사는 위험을 동반한다. 작년 4월부터 10월까지 3차례에 걸쳐 독도의 생태계를 모니터링한 박선주 영남대 생물학과 교수팀은 독도 경비대원의 도움을 받아 가파른 동도와 서도를 오르내렸다.
박 교수팀은 이를 통해 지금까지 한국에 서식한다고 밝혀지지 않았던 무당벌레 ‘사임너스(Scymnus)’ 등 곤충류 10종, 조류 6종을 새로 발견하는 성과를 올렸다. 또 현장에서 채취한 샘플의 DNA 분석을 통해 독도와 울릉도, 강원 양양, 일본 서해안에만 서식하는 해국(海菊)이 한국 고유의 종임을 입증했다.
박 교수는 “한국 고유의 종을 찾음으로써 무한한 가치를 갖는 우리만의 유전자원을 확보할 수도 있다”며 “생태조사는 이미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총성 없는 생물자원 전쟁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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