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터처블’ 형사단독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20일 03시 00분


부장판사 될때까지 신분보장
통제 안받아 ‘튀는 판결’ 많아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의 국회 폭력 무죄 판결, 미디어관계법 처리에 반대해 국회 회의장에 난입한 민노당 당직자들에 대한 공소기각 판결, “골프는 ‘운’이 아니라 경기자의 기량에 따라 좌우되므로 도박이 아니다”라는 억대 내기골프 무죄 판결.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들 판결의 공통점은 지방법원 형사단독 판사가 재판을 맡았다는 점이다.

법원 안팎에서는 이처럼 형사단독 판사의 판결에 유독 논란이 잦은 것은 단순한 법관 개인의 성향 탓이 아닌 법원 인사 시스템의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모든 법관은 임관 이후 사법연수원 기수에 따라 지방법원 배석판사-지방법원 단독판사-고등법원 배석판사-지방법원 부장판사 순으로 자동 승진한다. 법관 경력 22, 23년차 무렵에 행정부처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할 때까지는 본인이 사표를 내지 않는 한 단 한 명도 ‘걸러지지’ 않는 완벽한 신분 보장을 받고 있다.

법관 경력이 5년 이상이면 단독 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서는 20대 후반 내지 30대 초반의 판사가 단독 재판부를 맡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를 두고 한 재경 지법 부장판사는 “지법 단독 판사는 세상에 거칠 것이 없는 법원의 ‘언터처블(untouchable)’”이라고 표현했다. 고법 부장 승진까지 10년 이상 남은 젊은 단독 판사는 어떤 통제도 받지 않는 까닭에 누구의 눈치도 볼 일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 단독 판사가 맡는 사건 가운데에는 합의부(재판장과 2명의 배석판사로 구성) 사건 이상으로 중요한 사건이 많다. 과거에는 중요 사건의 경우에는 단독 판사 3명으로 꾸려진 재정합의부에 배당하곤 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중요 사건을 가늠하는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등의 이유로 재정합의부를 꾸리는 일이 거의 없다.

서울중앙지법원장을 지낸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는 “법원을 떠나고 보니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판사의 경험과 연륜이 중요한 것 같더라”며 “형사단독은 최소한 마흔 살 이상은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종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경력이 짧은 판사에게 단독 재판을 맡기는 것은 어린이에게 위험한 칼을 쥐여 주는 일”이라며 “일정 경력 이상의 법조 경력자를 대상으로 품성과 능력을 평가해 법관을 선발하고, 뽑힌 이들에게도 충분한 수습 기간을 거쳐 재판을 맡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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