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갑-전교조 이은 ‘판결 쇼크’… 檢 “법원, 상식도 안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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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1일 03시 00분


檢 부글부글… 법조계 “법원-정권 충돌 양상”
李대법원장 ‘사법부 독립’ 언급 정면대응 시사

기자회견 갖는 당시 PD수첩 제작진
20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광우병 보도 관련 PD수첩 제작진의 선고공판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PD수첩 조능희 책임PD(마이크 앞) 등 제작자들이 법정을 나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기자회견 갖는 당시 PD수첩 제작진
20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광우병 보도 관련 PD수첩 제작진의 선고공판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PD수첩 조능희 책임PD(마이크 앞) 등 제작자들이 법정을 나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20일 오전 11시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무죄 선고를 내리자 검찰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명예훼손, 허위사실유포, 업무방해죄가 모두 성립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문제가 됐던 PD수첩 보도내용들에 대해 허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등 검찰의 기소 내용을 어느 한 가지도 받아들이지 않은 탓이었다.

전현준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등 이 사건 수사팀은 곧바로 회의를 열어 점심식사도 거른 채 판결문을 꼼꼼하게 분석하는 등 대응책을 숙의했다. 대검찰청 수뇌부도 이날 오후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이 자리에서 “사법부의 판단에 불안해하는 국민이 많은 것 같다. 나라를 뒤흔든 큰 사태의 계기가 된 중요사건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와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발언내용을 조은석 대검 대변인을 통해 발표했다. 표현은 완곡했지만 하급심 판결에 대해 검찰 총수가 공식적으로 대응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어 신경식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오후 6시경 기자회견을 열고 “검사가 제기한 공소사실은 판단하지 않고 재판부가 스스로(임의로) 공소사실을 정리한 뒤 이에 대해 허위가 아니라고 판단해 검찰의 공소사실은 판단조차 받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날 법원의 무죄 선고는 이미 활활 타오르고 있던 ‘법원과 검찰 간 갈등’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국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무죄 선고와 서울 용산 참사 수사기록 공개 등을 둘러싸고 법원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검찰 내부 분위기는 훨씬 심각했다.

일선 검사들은 “법원이 이성을 잃은 것 아니냐”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PD수첩 정정보도 사건을 판결한 1, 2심 판사 6명이 ‘허위’라고 판단한 것을 단독판사 1명이 마음대로 진실이라고 뒤집을 수 있느냐”며 “법률을 떠나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재경 지검의 한 검사장은 “갈등을 조정해 사회구성원들의 통합도를 높여야 하는 법원이 오히려 논란의 중심에 서서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선 부장검사와 평검사들 가운데는 이날 판결에 대해 “정신 나간 판결이다” “법의 문제가 아닌 몰상식한 판결이다”라는 등의 민감한 발언도 다수 나왔다.

그러나 법원도 이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여서 법원과 검찰 간 갈등은 당분간 더욱 격렬하게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20일 출근길에 “사법부 독립을 굳건히 지켜낼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검찰은 물론이고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판결에 대한 반발을 ‘사법권 침해’로 규정하고 정면으로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비록 하급심 판결이긴 하지만 최근 법원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민감한 시국사건들에서 줄줄이 무죄를 선고한 것은 단지 법원-검찰 간 갈등의 차원을 넘어섰다는 시각도 있다. PD수첩 방송 내용은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를 촉발해 갓 출범한 이명박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사건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현 정권과 사법부가 정면충돌하는 양상으로 치닫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미 한나라당은 이 대법원장과 법원 내 진보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를 지목해 공격하고 있고, 사법제도개혁 논의를 본격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단 초점은 형사단독판사의 인사시스템을 뜯어고치는 데 맞춰져 있다. 강기갑 민노당 대표, 시국선언 주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간부,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죄 선고가 모두 형사단독판사들에게서 나온 탓이다. 19일 법조계 수장들의 비공개회동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참석자는 “로스쿨 졸업자를 곧바로 판사로 임용하지 말고 일정기간 법조인 경력을 쌓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고 여러 분이 이에 공감했다”고 전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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