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논객’들이 사라졌다. 인터넷 담론(談論)의 화두가 정치·사회에서 생활로 전환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지난해 1월 ‘인터넷 경제논객’으로 불린 미네르바 박대성 씨(32)가 구속되면서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인터넷 논객과 이들이 만든 토론장에 대한 논쟁이 절정에 달했지만 1년여가 지난 현재 이들은 담론의 현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인터넷 논객들 스스로도 “지금은 논객들이 많이 떠나고 침체된 분위기”라고 전한다. 2005년부터 포털 사이트 다음의 토론장 ‘아고라’에서 활동해온 논객 A 씨는 “예전에는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겠다 싶은 글은 조회수가 1만∼2만 건을 금방 넘겼는데 요즘은 몇 백 건밖에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아고리언’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든 토론장 아고라의 경우 2009년 1월부터 12월 1년 사이 열람횟수(페이지뷰·PV)가 6억9000건에서 3억5000건으로 반토막 났다. 월 방문자 수도 539만 명에서 337만 명으로 감소했다. 인터넷 논객들의 집합소로 알려진 ‘한토마’ 역시 방문자 수가 같은 기간 65만 명에서 34만 명으로 줄었고 논객들의 주무대인 시사이슈 전문포털 ‘서프라이즈’도 19만 명에서 16만 명으로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논객의 퇴조 현상의 원인을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누리꾼들의 피로감 때문으로 보고 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2008년 촛불집회, 2009년 용산 참사, 노무현 대통령 서거 등 대형 이슈가 이어지면서 대중들이 정치 사회 분야의 이슈에 대한 싫증을 보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동안 인터넷 논객들의 글을 열독했다는 회사원 이현진 씨(29)는 “분명 다양한 사회문제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고 보지만 지금은 다 재미없다”며 “뭔가 불이 꺼진 것 같고 장사가 끝난 가게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저작권법이 강화되면서 머릿속 지식보다는 인터넷 정보를 활용해 글을 쓰던 인터넷 논객들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포털 사이트 다음 측은 “미네르바 사태 이후 온라인저작권도 강화돼 관련 신고를 즉시 처리할 수 있게 됐다”며 “인터넷 논객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토마의 한 관계자는 “온라인저작권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다 보니 인터넷 논객들 사이에 자기검열이 심해진 측면도 있다”며 “자조적인 말투로 ‘쓰고픈 글을 못 쓴다’며 토론장을 떠난 논객도 많다”고 말했다.
인터넷 공론장에서 정치 사회적 담론은 쇠락한 반면 개인적 성향의 생활과 문화의 공간은 확대되고 있다. 동아일보가 블로그 사이트인 ‘이글루스’의 2008∼2009년 1∼100위 인기블로그 200개를 분석한 결과 개인생활, 취미를 주제로 한 블로그가 110여 개로 절반을 넘었다. 반면 시사이슈를 다룬 블로그는 20여 개에 불과했다. 윤영철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은 “전문가들이 책임 있는 토론을 하고 누리꾼들이 이들과 상호 소통하는 방식의 토론장이 더 효율적”이라며 “게시판 형식의 토론장보다 소규모 커뮤니티의 개인 간 대화가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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