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S 작정하고 적발… ‘반칙 코리아’ 찍히나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1월 24일 19시 50분


SAT 문제유출에 사용된 범행도구.
SAT 문제유출에 사용된 범행도구.
23일 SAT 시험문제를 빼돌린 혐의로 입건된 R어학원 강사 장모 씨(36)는 대학생 3명을 고용해 조직적으로 시험문제를 빼냈다. 지난해 10월, 11월, 12월에도 시험지를 빼낸 전력이 있는 만큼 수법은 교묘하고 섬세했다. R어학원은 이번 사건에 앞서 17일 미국과 아시아의 시차를 이용해 태국에서 문제지를 빼내 불구속 입건된 김모 씨(37)의 현재 소속 어학원이다.

● 범행 도구 등 치밀하게 준비

장 씨와 장 씨가 10만 원씩 주고 고용한 대학생 3명 등 4명은 시험 전날인 22일 만나 범행을 사전에 공모했다. 장 씨는 시험장에서 망을 보고, 모두 14장으로 구성된 SAT Ⅱ 수학·물리 시험지는 같은 교실에서 시험을 본 차 씨 등 3명이 각자 서너 장씩 빼내기로 했다. 감독관 몰래 시험지를 잘라내기 위한 도구도 만들었다.

엄지손가락만한 지우개에 문구용 칼심을 박은 것이 범행 도구였다. 이 도구와 휴대용 연필깎이를 이용해 이들은 은밀하게 시험지를 잘라 빼돌릴 수 있었다. 시험을 보는데 필요한 공학용 계산기도 이용했다. 차 씨 등은 계산기에 직접 문제를 입력하거나 케이스에 베껴 적는 방식으로 문제를 빼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문제를 빼내는가 싶었지만 결국 장 씨 등은 경찰에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23일 오후 12시 반경 시험종료후 또다시 문제지 몇 장이 사라진 것을 눈치 챈 미국 교육평가원(ETS) 측의 수사의뢰를 받고 이날 오후 4시경 장 씨를 체포했다.

지난해 12월 ETS 측은 장 씨 등이 시험지를 유출했다는 시험장 관리자의 제보를 받고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당시 ETS는 별도의 대응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문제지 검사를 한 뒤 장 씨 등이 또다시 문제를 유출한 사실을 파악하고는 곧바로 서울 수서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에 앞서 ETS 본사는 21일 시험 보안 담당자를 한국에 급파했다. 한국에서 일고 있는 SAT 문제 유출 논란에 대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계속되는 SAT 문제유출 논란에 ETS도 본격적으로 대응에 나선 것이다.

● ETS "응시자 전체 성적 무효화 가능성도"

ETS는 24일 공식 해명자료를 내고 "잇따른 문제 유출 사건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수천 명의 한국학생들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이번 사건과 한국 언론의 문제제기를 통해 시험보안 침해에 대해 지속적이고 철저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ETS 측은 또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라 앞으로 시험 운용이나 성적 처분에 대해 아무 것도 확정된 것은 없다"고 했지만 "2007년처럼 응시자 전체 성적이 무효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논란에 23일 시험을 치른 학생들은 물론 SAT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23일 시험을 치른 이모 씨(22·여)는 "혼자 열심히 시험을 준비했는데 혹시 시험 점수가 취소될까봐 걱정"이라며 "이번에 경찰에 적발된 강사는 이전에도 세 차례 문제를 빼돌렸다는데 계속해서 문제 유출을 하도록 조치를 취하지 않은 ETS 코리아 측도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권모 양(18)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다. 권 양은 "한 달에 200만 원이 넘는 학원비가 부담돼 혼자서 준비했는데 돈 많은 일부 학생들의 몰지각한 행동 때문에 시험이 피해를 입는 게 아니냐"며 흥분했다.

서울 강남의 N아카데미 원장 이성우 씨는 "미국 아이비리그의 경우 1월 시험 점수까지 반영이 되는데 이번 문제로 시험 점수가 취소되면 손해를 보는 학생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K어학원 강사 김모 씨는 "불법으로 유출한 기출문제를 받는 사람은 시험 전 날 술 먹고 편하게 시험 보러 간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불법유출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며 "정당하게 정직하게 공부하는 사람들이 보는 큰 피해를 보고 있는 현행 시험 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