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 털어 5년간 봉사 정병용 이사장 이주민 문제 방치할 땐 美처럼 인종갈등 우려 개인 돈으로 운영 한계… 국가가 두팔 걷어야
“우리 서로 사랑했는데, 우리 이제 헤어지네요. 같은 하늘 다른 곳에 있어도, 부디 나를 잊지 말아요.” 22일 서울 광진구 화양동 세종한글교육센터의 한 강의실. 다문화 이주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이라 ‘가갸거겨’ 소리가 울려 퍼질 것 같았지만, 뜻밖에 수강생들은 가수 백지영의 최신곡 ‘잊지 말아요’를 합창하고 있었다.
강의 집중도는 자연스레 높았다. 40여 명이 모인 강의실에서 서툰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선생님에게 질문하는 학생도 많았다. 한국어를 배운 지 5개월 된 베트남 출신 응우옌티투이티엔 씨(38·여)는 “노래로 한국어를 배우니 쉽고 재미있어 빨리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시집온 이주여성들을 위해 5년째 무료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세종한글교육센터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없이 순수하게 개인 사재로 운영되는 곳이다. 이 학교의 설립자인 정병용 이사장(63)은 2006년 자신이 운영하는 광진구의 한 주유소 뒤에서 교실 한 칸으로 한국어 교육 사업을 시작했다. 이제는 교사 6명에, 학생 수도 세계 각국에서 온 이주여성을 포함해 130명으로 늘었다.
정 이사장이 외국인 한국어 교육에 나선 데는 개인적인 체험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버스 정류장에서 ‘수색 가는 버스를 태워 주세요’라고 적힌 쪽지를 들고 있는 20대 여성을 본 적이 있다”며 “외모는 한국인과 차이가 없었지만 알고 보니 동남아 출신 이주여성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수색’이라는 한글도 읽을 수 없는 이주여성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어머니가 한글을 모르는데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시킬지 걱정되더군요.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면 장차 한국도 미국처럼 ‘인종 갈등’에 휩싸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정 이사장은 개인적으로 ‘한글 봉사’에 나섰다. 처음에는 한국어로 교육을 시키려 했지만 효과가 없자 영어와 중국어를 할 수 있는 교사를 채용했다. 1년에 5000만 원 들던 운영비는 지난해 1억5000만 원까지 늘었다. 교사 월급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교재비나 점심 식사까지 센터에서 부담하고 있기 때문.
“사람이 너무 늘어나면 우리가 데리고 있을 수 없어 ‘강제 졸업’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어 실력이 늘지 않아도 다음 사람을 받아야 해 졸업시킬 때는 정말 안타까워요.”
설립한 지 몇 년이 지나면서 세종한글교육센터는 이제 ‘학교’이기 이전에 광진구 결혼이주여성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좀처럼 한꺼번에 모이기 힘든 이들이 이곳에서 한국어도 배우고 서로의 애로사항도 토로한다. 정 이사장은 “시어머니 생신날에 중국 풍습대로 길게 썬 국수를 내놨다 매를 맞고 온 한 중국 출신 며느리처럼 문화 차이 때문에 갈등을 빚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한국 문화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순수하게 개인 자금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게 힘들지 않을까. 정 이사장은 “이런 상황으로 학교를 계속하면 나도 몇 년 후 손을 들지 않을까 싶다”며 “이제는 국가가 이주여성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광진구에만 다문화가정이 1200여 가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이들을 모두 가르칠 수 있는 큰 건물을 세워서 구청 등에 기부하는 것이 꿈”이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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