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주차 하시오.’ 주차장에 이런 안내 문구가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후면주차를 하면 자동차 매연으로 화단의 나무가 죽거나 주차장 벽이 더러워지는 등 피해가 많기 때문이다. 1층에 사는 주민들의 불편도 크다. 하지만 전북 전주에 사는 대학생 박현아 씨(22·여)가 학교 주차장을 조사해 보니 이를 지키는 사람은 29%에 불과했다.
사람들의 행동을 친환경적으로 손쉽게 변화시킬 방법은 없을까. 박 씨 등은 자신들이 다니는 대학교 주차장에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고압적인 안내 문구를 지우고 올바른 방향으로 주차한 자동차 그림을 바닥에 그려놓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전면주차 참여율이 100%에 가까울 정도로 높아졌다. 그림 하나가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변화시킨 것이다.
○ “그림 하나로 세상을 바꾼다”
환경부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친환경적으로 바꾸기 위해 이런 식의 부드러운 개입을 선택하기로 했다. 금지와 규제 일색인 환경정책에 ‘너지(nudge)’를 도입하는 정책실험에 나선 것. 너지란 ‘팔꿈치로 쿡 찌르다’라는 뜻으로 ‘부드럽게 개입해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선택설계 기술’을 말한다. 소변기 한가운데에 파리 모양의 스티커를 붙여 놓는 것만으로 남성들의 ‘조준심리’를 자극해 밖으로 튀는 소변량을 줄인 것이 너지의 대표적인 사례다. 환경부는 ‘너지 환경정책’ 아이디어 공모전에 참가한 사람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26일 소개했다.
그림 하나로 세상을 바꾸는 친환경 아이디어가 많았다. 원주지방환경청은 신호등을 바꾸는 것만으로 기름 소비를 줄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자동차가 엔진을 켜고 정차할 때 기어를 중립에 놓으면 온실가스와 대기오염 배출량을 약 40∼50%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중립기어를 잘 놓지 않는 사람들의 운전 습관. 원주지방환경청은 신호등의 빨간불에 중립 기어를 의미하는 ‘N’자가 나타나도록 하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빨간불이 켜질 때마다 자연스럽게 기어 중립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수구 주변을 물고기 그림으로 장식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하수구에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버리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그림 때문에 앙상한 물고기의 뼈처럼 보이는 하수구에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아, 내가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등 전력 사용량이 많은 시설을 안내하는 픽토그램(시설 등을 안내하는 그림문자)에는 뚱뚱한 사람 모양을 그려놓고, 계단 이용을 안내하는 픽토그램은 날씬한 사람 모양을 그리자는 제안도 눈길을 끌었다. 뚱뚱한 사람 그림을 보면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기로 마음먹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는 계산이 담겨 있다. 문정호 환경부 기획조정실장은 “딱딱한 문구보다는 작은 그림 하나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환경정책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생활 속 친환경 아이디어들
아래로 향하는 수도꼭지가 하늘로 솟아 있다면 어떻게 될까. 대구에 사는 김태균 씨(24)는 물 절약을 위해 위로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를 제안했다. 김 씨는 “공원에 가서 보니 많은 사람이 수도꼭지를 최대한으로 틀어놓고 물을 펑펑 쓰더라”며 “하늘로 물이 솟는다면 자신에게 물이 튈까봐 적당한 수압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치 않는 팩스를 받느라 낭비되는 종이가 아깝다면 ‘PC화면으로 출력되는 팩스’에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
환경부는 이처럼 실제 적용이나 상품화가 가능한 아이디어 7건을 수상작으로 뽑았다. 대상은 ‘물소리로 물을 잡는다’는 아이디어를 낸 김현희 씨(22·여)가 받았다. 김 씨는 여성들이 화장실에서 소변보는 소리가 남에게 들릴까봐 물을 자주 내려 낭비가 심하다는 점에 착안해 자동으로 물소리가 나는 변기를 고안했다.
또 ‘전면주차를 유도하는 그림’과 ‘에스컬레이터 이용을 자제시키는 뚱뚱한 픽토그램’이 각각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받았다. 금고 모양으로 만들어 낭비를 없앤 휴지 케이스와 쓰레기 투기를 막는 물고기 하수구, PC 화면에 출력되는 팩스, 친환경 소비에 현금 포인트를 주는 ‘그린백 포인트 카드’ 등도 우수상으로 선정됐다.
환경부는 이번 공모전을 통해 수집한 40여 개의 아이디어 중 일부는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실제로 도입하고, 나머지 아이디어는 책자로 발간해 지방자치단체나 환경단체에 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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