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외과, 수술여성 ‘비포&애프터 사진’ 무단 유출-광고병원 홍보에 동의없이 사용항의하면 “모델료 주겠다”피해자 대인기피증까지인터넷 광고 규제방법 없어
“지금 전화 건 번호의 고객님은 당분간 잠수 중이십니다.” 그에게 전화를 걸면 이런 안내 음성이 흘러나온다. 친구들조차 수시로 전화번호를 바꾸는 그에게 연락하기가 쉽지 않다. 1년 넘게 친구들과 지인들을 피해 꼭꼭 숨어 생활하고 있는 신현정 씨(가명·24·여). 평범한 여대생이던 그가 이렇게 변하게 된 사연은 2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예뻐지고 싶어서 한 수술이었어요. 고민 끝에 여기저기 알아보다 병원을 찾아갔죠.” 신 씨가 15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한 성형외과에서 눈, 코, 이마, 광대뼈, 턱 수술을 받은 것은 2007년 말경. 수술 후 병원에서는 “수술이 잘됐으니 사진을 찍자”고 몇 차례나 권유했다. 부모님께 알리지 않고 몰래 한 수술이라 촬영을 거부한 신 씨에게 병원 측은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줄 건 아니고 우리만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여러 차례의 권유에 신 씨는 마지못해 사진을 찍었다.
턱이 시리는 등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신 씨는 자신의 성형수술 사실을 알게 될까 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홀로 참았다. 하지만 수술 후 1년여 뒤. 신 씨는 한 친구의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병원에서 네 사진을 보여주더라. 너 그렇게 생겼었니? 우리만 본 게 아닌 것 같은데.” 신 씨의 얼굴을 봤다는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들은 “어쩐지 네 얼굴이 부자연스러웠다”며 조롱 섞인 연락을 해왔다. 신 씨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따졌다. 처음엔 그런 일이 없다고 발뺌하던 성형외과 측에서는 지인들의 이름을 대자 “초상권은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소송을 해서라도 사진을 없애도록 하겠다”고 강하게 항의하자 그때서야 병원 측은 “상담용 사진목록에서 사진을 빼겠다”고 약속했다.
1년이 지난 지난해 12월 겨우 마음을 추슬렀던 신 씨는 또다시 절망에 빠졌다. 문제의 성형외과가 인터넷 홈페이지 광고에 신 씨의 사진을 올려놓은 것. 무서워서 울기만 하다 겨우 들어가서 확인한 홈페이지에는 성형수술을 마친 뒤 메이크업을 하고 미소 짓던 자신의 얼굴이 있었다. “‘나 아니라고 우기면 되겠지’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있었는데 모자이크 하나 없이 올라간 사진은 누가 봐도 저더군요.” 이미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 블로그에 수십 장이 퍼져 있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사진 아래 무수히 달린 댓글을 보고 생전 처음 ‘죽어버릴까’란 생각도 했다. 그녀를 더 무너지게 만든 것은 무서우리만치 태연한 병원의 태도였다. “미안한데 병원에 오시면 모델료 드릴게요. 아니면 수술을 더 해드릴까요.” 변호사를 통해 “사진이 홍보에 딱 좋으니 모델료 받고 계속 사진을 사용하게 해주면 안 되겠느냐”는 요청까지 왔다. 신 씨는 결국 지난해 12월 행정안전부 산하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냈다. 신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성형외과에서는 ‘그냥 잠깐 쓰고 몇백만 원 던져주면 되겠지’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길에서 웃는 사람만 마주쳐도 ‘혹시 내 사진 봤나’ 싶어서 대인기피증까지 생겼어요.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조차 두려워졌어요.”
성형외과 간의 고객 유치 경쟁과 홈페이지를 통한 광고가 성행하면서 신 씨처럼 성형수술 과정에서 찍은 ‘성형 전후(Before & After) 사진’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무단 유출돼 피해를 보는 사례가 늘고 있다. 행안부 산하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 강달천 사무국장은 “성형 전후 사진을 두고 갈등을 빚어 조정 단계까지 오는 일이 매달 발생한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전반적인 성형외과 관련 분쟁 건수는 2003년 1430건에서 2009년 2016건으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성형 전후 사진과 관련한 분쟁 건도 상당수로 추정된다.
사진 유출에 대해 성형외과들은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광고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압구정동의 모 성형외과 실장은 “성형외과를 찾는 손님 중 상당수가 성형 전후 사진을 보고 수술을 결정하는 편이라 병원에서는 사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 카페, 홈페이지를 통한 광고에 제대로 된 심의나 단속조차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다. 의료광고 심의를 하는 대한의사협회 의료광고심의위원회 측은 “현재 인터넷 광고는 심의 대상에서 빠져 있다”고 밝혔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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