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창준]배심원도 PD수첩을 무죄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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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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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적 관심이 지대했던 사안에 대해 경험이 부족한 판사 한 명이 묘한 법 해석으로 무죄 판결을 내린 일이 잇따라 발생했다. 민주노동당 대표가 책상 위에 올라가 ‘공중 부양’을 한 의원답지 않은 행동, 또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려 죽을 듯이 선동한 언론보도로 수만 명이 두 달간 촛불시위를 벌이면서 엄청난 국가적 피해를 낸 일을 아무 문제가 아니었던 것으로 만들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런 상식 밖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 법정 판결이 판사의 성스러운 특권인 양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고등법원에서 허위라고 인정한 부분을 중앙지법에선 모두 허위가 아니라고 했으니 같은 사안을 놓고 판사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면 국민이 얼마나 불안할지 상상이 간다. 이쯤 되면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이다.

미국에서는 1994년에 흑인 미식축구 선수 겸 영화배우인 O J 심슨의 백인 부인 니콜과 그녀의 남자친구인 테니스 코치가 누군가에게 살해됐다. 칼에 찔려 혈흔이 흥건했고 주검 옆에서 신발이 발견됐지만 살인에 사용된 도구는 찾지 못했다. 검찰은 심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고 법원은 배심원을 선정했다. 배심원은 12명의 시민으로 구성됐다.

심슨은 언론이 드림팀으로 지칭한 유명 변호사팀을 꾸렸다. 검찰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여검사 마샤 클라크가 나섰다. 이 공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텔레비전으로 생방송되면서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사건에 대해 80% 이상의 미국 국민은 심슨이 범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검찰은 드림팀의 조직적인 활동으로 배심원 설득에 실패했고 심슨에게 무죄 판결이 나왔다.

국민은 돈으로 무죄 판결을 샀다며 심슨을 비난했고 유가족은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법정 싸움이 다시 시작됐다. 12명의 새로운 배심원은 심슨에게 850만 달러를 배상하도록 했고 심슨은 빈털터리가 됐다. 이때가 1997년 2월 4일이다. 사회에서 소외된 심슨은 결국 환갑이 지난 나이에 도둑질하다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드림팀 변호사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 속에 결국 서서히 추락했다. 법정투쟁에서 패한 여검사도 할리우드로 진출해 검사 역을 맡은 배우로 활동하다 얼마 못 가 사라졌다.

미국인은 미국의 사법제도가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국민 자신이 배심원이 되어 법정 판결을 내고, 국민 투표로 판사를 뽑고, 4년마다 대통령을 심판할 수 있는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광우병 사건은 심슨 사건보다도 사회에 미친 손실이 몇 배 더 컸다. 어린아이들이 오래 살고 싶다고 애원하는 장면과 경찰을 몽둥이로 패는 시위대의 사진을 본 미국인들은 어리둥절했다. 수억 명의 미국 시민이 1주일에 두세 번은 미국산 쇠고기를 즐겨 먹는데 광우병에 걸린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한국 사람만 유난히 걸릴 확률이 높다지만 200만 명이 넘는 미국 내 한국인 중 미국산 갈비를 먹고 광우병에 걸린 경우는 한 명도 없었다. 한국 법원은 허위보도로 수천억 원의 경제 피해를 초래했는데도 무죄 판결을 내렸다. 대한민국 국민은 한 사람의 판사에게 이런 중대한 사건을 맡기지 말고 미국식 배심원 제도의 도입을 생각해야 한다.

배심원은 국민이 직접 판사가 되는 것이다. 판사보다 법은 잘 몰라도 상식적인 판단을 하는 보통 국민이 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배심원 제도는 200년 넘게 미국에서 존속되고 있다. 판사는 재판 절차를 진행하는 역할을 할 뿐 결정권은 배심원에게 있다. 심슨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배심원의 결정에 많은 미국인이 실망했지만 그 결정을 존중했다.

김창준 전 미 연방하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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