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집단소송’ 변호사는 패소해도 대박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28일 03시 00분


■ 정보유출 사건후 기승
인터넷 카페서 소송단 모집
“승소땐 수백억 번다” 광고도
2만여명 수임료만 7억원

■ 유혹 못떨치는 변호사
성공보수 배상금의 30%선
지명도 높일 ‘절호의 기회’
경험부족 많아 피해자만 분통

“당연히 승소할 것처럼 부추기던 이런 소송에 다시는 참여하지 않을 겁니다.”

한 변호사가 2008년 개설한 ‘옥션 집단 소송 참가자 모집’ 카페에는 최근 가입자들이 소송 비용 환불을 요구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해킹으로 개인정보가 유출된 옥션을 상대로 낸 소송 1심에서 14일 패소 판결이 나면서부터다. 사법사상 가장 많은 14만6000여 명의 원고(原告)가 한꺼번에 패소하면서 최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 등에서 잇따랐던 집단 소송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 정보유출 사건 뒤 ‘기획 소송’ 밀물

옥션 사건처럼 피해자가 많은 소송의 경우 초기 소송 비용이 1만∼3만 원 수준이라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참여하는 경향이 있다. 옥션 소송에 참여한 정모 씨(37)는 “그리 많은 돈이 드는 상황이 아니었고 변호사에게 전권을 위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런 피해자들의 심리를 파고든 일부 변호사가 인터넷 카페를 통해 소송인단을 대거 모집하면서 집단 소송은 요즘 ‘기획 소송’으로 불린다. 1100만 명의 정보가 유출돼 현재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GS칼텍스 정보 유출 사건의 경우 소송인단을 모집하는 관련 카페만 30∼40개에 이를 정도다. 대규모 정보 유출 사건이 알려지는 즉시 우후죽순으로 생긴 이들 카페에는 과거 정보 유출 사건의 승소 경험뿐 아니라 배상금을 최대 수백억 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광고성 글까지 올라와 있다.

개인정보 유출에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소송을 추진하는 변호사도 있지만 일부 변호사가 쌈짓돈 소송에 열을 올리는 것은 소송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막대한 수임료 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사건이라 승소하면 변호사의 인지도도 올라간다. 옥션 소송의 경우 소송인단은 A 변호사에게 인지대, 송달료 등으로 3만 원을 선불로 주고 배상금이 나오면 30%를 성공 보수로 주기로 했다. B 변호사의 경우 불과 몇 개월 만에 2만2000여 명을 모집해 7억 원 넘게 모았다.

○ 수만 명 소송 진행과정 곳곳에 암초

그러나 대부분 개인 변호사나 소형 로펌에서 경쟁적으로 소송인단을 모집하기 때문에 대규모 인원을 관리할 인력이 모자라 진행 과정에서 마찰을 겪는 일이 적지 않다.

회원이 20만 명인 C 변호사의 ‘옥션 정보 유출 소송 모임’ 인터넷 카페는 소송 비용을 냈는데도 소송 명단에 포함되지 않는 일이 생겨 1심이 끝난 지금도 5000명이 넘는 회원의 환불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이 카페에 가입한 김모 씨(32)는 카페 가입 직후 3만 원을 변호사에게 입금했지만 서류를 e메일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겨 소송 명단에서 누락됐다. 김 씨는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해 환불을 요구했지만 인력이 없다면서 지금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소송인이 수만 명인 데다 인터넷을 통해 소송준비 절차가 진행되기 때문에 원고가 실제 피해자인지를 따지고 관련 서류를 제출하는 데에만 몇 개월씩 걸린다. 그래서 도중에 마음을 바꿔 소송을 취하하겠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원고도 많다. 일부 로펌 직원은 회원들의 항의에 시달려 한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퇴사해 업무의 지속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한 변호사는 “국내 집단 소송은 몇 명이 소송을 내면 판결의 효력이 소송을 내지 않은 나머지 피해자들에게도 적용되는 미국의 집단소송(Class Action)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소송 인원이 많아 발생하는 비효율적인 면이 있는 만큼 효율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최영준 인턴기자 숭실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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