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연행과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장기간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김우철 이철 형제간첩 사건’ 당사자들이 35년 만에, 그것도 둘 다 세상을 등진 뒤 이뤄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광주고법 제3형사부(부장판사 장병우)는 28일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 김 씨 형제의 유족이 청구한 재심에서 “간첩 혐의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김 씨 형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975년 당시 경찰수사관들이 김 씨 형제를 영장도 없이 강제연행한 뒤 16일간 불법감금 상태에서 수사했을 뿐만 아니라 고문과 폭행, 협박 등 가혹행위를 한 점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원심은 증거능력 또는 신빙성 없는 증거를 기초로 유죄를 인정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밝혔다.
유족 측은 지난해 3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 조사 결과 등에 따라 불법 연행과 고문, 가혹행위를 통해 간첩죄가 조작된 사실이 드러났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김우철 형제간첩 사건은 1947년 일본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한 재일동포 김우철 씨(당시 58세)가 1975년 2월 동생 김이철 씨(당시 51세)와 함께 경찰에 끌려가 고문과 협박 끝에 허위자백해 간첩으로 몰린 사건이다. 김 씨 형제는 당시 “고문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다”고 항변했지만 1심에서 징역 12년과 징역 4년을 각각 선고받은 뒤 항소해 징역 10년과 징역 3년 6개월의 형이 확정돼 만기복역 후 출소했다. 이후 두 사람은 고문 후유증으로 병원을 전전하다 김우철 씨는 1999년에, 동생 김이철 씨는 2002년에 각각 숨졌다.
광주=김권 기자 goqud@donga.com
■ 진실화해위 “1983년 납북어부 사건도 조작”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군사정부 시절 납북됐다가 귀환한 어부들이 간첩으로 처벌된 2건의 사건을 조사한 결과 정부의 왜곡과 조작이 확인됐다고 28일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이들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와 확정판결 재심을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1983년 수감된 ‘이상철 씨 간첩조작 사건’이 대표적인 왜곡사건이라고 밝혔다. 위원회에 따르면 어부였던 이 씨는 1971년 울릉도 근해에서 풍랑을 만나 북한까지 올라갔다. 1972년 7·4 남북공동선언 직후 귀환했지만 1970년대 내내 경찰의 관리를 받았다. 경찰 수사관이 신원을 보증해 거제도의 한 조선소에 취직했지만 그게 오히려 화근이 됐다. 1983년 국가보안사령부는 이 씨를 연행해 잠을 재우지 않거나 성기에 전기고문을 하는 등 가혹행위를 하여 “고정간첩으로 활동했다”는 진술을 얻어내 14년형을 받게 했다. 조선소와 같은 특수시설에 침투했다는 혐의였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당시 수사관도 가혹행위 사실을 인정했다”며 “이 씨는 2006년 출소한 직후부터 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지만 2007년 별세했다”고 말했다.
또 진실화해위는 최만춘 씨 등 전북지역 어부 9명이 1969년 경찰에 구속영장 없이 무단 억류돼 구타와 고문을 당한 사건 역시 정부 당국의 ‘각본 수사’로 보고 국가 사과를 권고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당시에는 정부가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납북어부들을 간첩으로 몰았다”며 “현재까지 위원회가 접수한 납북어부 간첩사건 9건 모두가 국가 조작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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