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가, 만5세~초등6학년 대상 인기몰이
흥미-사고 통해 ‘생각하는 힘’ 기르는데 역점
“공식암기-반복보다 놀이학습 훨씬 효과적”
《“수학을 싫어하는 학생입니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없을까요?” 수학은 싫어하는 학생이 유난히 많은 과목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포자’는 점차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수포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시기를 초등학교 4학년 때라고 말한다. 4학년부터 다루는 숫자의 단위가 커지고 분수와 소수의 사칙연산이 등장하는 등 난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수학은 어려운 공식을 암기해야 한다는 부담이 큰 데다 문제풀이를 반복하는 학습법은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든다. 최근에는 즐겁게 수학을 접하면서 창의력까지 키우는 ‘사고력 수학’이 유명 학원가를 중심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과외교사 구인란에도 ‘사고력 수학 지도 가능한 분’이란 문구가 부쩍 눈에 띌 정도다.
○ 문제풀이 대신 놀이와 토론
사고력 수학 수업에서는 교사가 공식을 알려주지 않는다. 많은 문제를 푸는 것도 아니다. 문제 하나를 놓고 학생들은 저마다 풀이 방법을 내놓는다. 학생들끼리 각자의 풀이 방법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를 토론하면서 최상의 풀이 방법을 찾아간다. 교사는 문제 이해를 돕고 토론이 잘 이뤄지도록 하는 보조 역할만 담당한다.
김화자 하늘교육 교재연구소 연구원은 “사고력 수학 수업에서는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보고 말이나 문장을 통해 표현해 볼 수 있다”며 “수학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에도 필요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에 중점을 둔다”고 말했다.
사고력 수학 수업에서는 장난감 같은 블록이나 퍼즐을 맞추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종이와 가위, 색연필까지 동원하는 모습을 보면 미술 시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고력 수학 전문가들은 수학은 추상적인 성격이 강해 지루해하지 않도록 다양한 교구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정육면체의 전개도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소마큐브’라는 나무토막으로 다양한 형태의 입체를 만들어 각 면을 관찰한다.
책에 나온 그림을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것보다 훨씬 흥미로울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수학을 몸으로 익힐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교구를 이리저리 만져보고,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하다 보니 사고력 수학 수업엔 한꺼번에 많은 학생이 참여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부분 학원에서는 4∼6명의 소규모 그룹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교사가 학생의 집을 찾아가는 ‘일대일 방문수업’도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해서 한 주간 공부할 교구를 주고난 뒤 기초 개념과 교구 사용 방법을 알려준다. 아이는 부모와 함께 교구를 갖고 놀듯 공부할 수 있다. 대부분 사고력 수학 학원은 만 5세부터 초등 6학년까지를 대상으로 한다. 수학 원리와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연령이 만 5세 전후이기 때문이다.
○ 수학 학습의 키워드, 흥미와 사고
사고력 수학이 최근에 등장한 것은 아니다. 이미 1990년대에 일부 영재 교육기관이 영재들을 대상으로 사고력 수학 수업을 했다. 2000년대 초반에도 영재교육원 시험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사고력 수학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 최근 들어 일반 학생들에게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최근에는 중하위권 학생들도 사고력 수학을 많이 찾고 있다”면서 “상위권은 영재교육원 대비를 위해, 중하위권은 수학적 아이디어를 계발하기 위해 사고력 수학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도 사고력 수학을 도입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초등학교 7차 개정 수학 교과서를 보면 ‘생활에서 알아보기’ ‘활동’ ‘놀이’ 등 학생 활동을 중시하고 있다. 원리를 익힌 뒤 반복 연습을 하도록 강의 중심으로 구성됐던 기존 교과서와는 다른 모습이다.
조경희 시매쓰 수학연구소 소장은 “만 5세 이후 수학 학습에서는 흥미와 사고,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 소장에 따르면 수학을 흥미로운 것으로 인식하려면 실제 생활에서 다양한 사물을 이용해 놀이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놀이와 게임에 그쳐서는 안 된다.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고 발표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교구 활용이 지나치면 교구에만 빠지기 쉽다. 교구로 흥미를 불러일으킨 다음에는 교구 없이도 사고하도록 해야 한다.
○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사고력 수학
조 소장은 “가정에서도 얼마든지 사고력 수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보기, 하루 시간표 짜기, 은행 업무, 청소하기 등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일상생활 곳곳에 수학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는 “주말 나들이를 떠나는 자동차 안에서도 수학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번호판은 4개 숫자로 돼있는데 이 숫자로 여러 가지 계산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 가는 자동차의 번호판 숫자를 빨리 더하는 사람이 이기는 식의 게임도 가능하고, 앞쪽 두 자릿수와 뒤쪽 두 자릿수의 차를 구하는 게임도 있다.
좀 더 숫자 감각이 뛰어난 아이라면 “홀수가 3개 들어있는 번호판을 찾아보자”라거나 “네 숫자의 합이 10 이상이고 15 이하인 번호판을 찾아보자”는 식의 게임을 할 수도 있다.
지하철 안에서도 할 수 있는 수학 활동이 있다. 노선도를 보면서 역과 역 사이를 잇는 최단 거리, 최소 환승 구간을 찾아보는 것이다. 음식점에서도 수저통에 꽂힌 젓가락이 몇 개인지 어림잡아 보거나 음식 값을 계산해 보기와 같은 수학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런 활동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이 새로운 활동을 만들게 된다.
조 소장은 “조급한 마음에 빨리 답을 알려주거나 아이가 스스로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가르쳐주려 하면 안 된다”며 “아이가 중심이 돼서 생각을 끌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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