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1호’ 용기냈던 30대, “주변서 알면…” 인터뷰 사양
작년 남성 육아휴직 502명… 그들이 떳떳할 날은 언제쯤
국가 수사기관에 근무하는 30대 중반의 A 씨는 직무상 10대 비행 청소년을 자주 만났다. 대부분이 문제가 있는 가정의 아이들이었다. 가정에서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 결국에는 사회 전체가 상처를 입는다는 걸 절감했다.
1년 전쯤 A 씨의 둘째아이가 태어났다. 아내가 전업주부였지만 A 씨는 과감하게 1년간의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A 씨의 직종에서는 초유의 남성 육아휴직이었다. 일부에서 말렸지만 A 씨는 용기를 냈다.
육아휴직 기간에 A 씨는 아빠가 된 뒤 처음으로 두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다. 정말 행복했다고 한다. 힘이 닿는 한 아이를 더 낳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A 씨는 최근 휴직을 마치고 직장으로 복귀했다. 기자는 그가 육아휴직 기간 ‘아빠’로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듣고 싶었다. 4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지방에 있는 그를 찾아갔다.
A 씨는 자기 이야기가 신문에 소개되는 것을 한사코 사양했다. 직무와 관련된 일도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 세상에 알려지는 게 싫단다. 승진에서 뒤처질 위험까지 감수하고 육아휴직을 낸 그였기에 이런 반응은 의외였다. A 씨는 여러모로 고민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주변을 취재해 보니 그의 고민이 전혀 이유 없는 건 아니었다.
A 씨의 직장이 아직도 남성 중심의 엘리트 조직이긴 하지만 동료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육아휴직 제도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래도 A 씨에 대해서는 의아하다는 시선이 많았다. 휴직을 핑계로 공부하려는 게 아니냐, 남자까지 육아휴직을 해 버리면 일은 누가 하느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사실 A 씨의 직장만 그런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육아휴직을 내는 남성은 ‘소수자’다. 사회와 조직으로부터 편견의 대상이 된다. 지난해 육아휴직을 한 여성은 3만4898명이었지만 남성은 502명에 불과했다는 노동부 통계가 잘 보여준다.
미국 시카고대 사회학과 야마구치 가쓰오 석좌교수에 따르면 일본에서 남편의 육아 참여 시간이 6∼8시간인 가정은 둘째 아이를 가진 비율이 37.5%에 이른다. 그러나 2시간 이하인 가정의 경우는 22.2%밖에 되지 않는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처럼 남녀가 가정에서 평등하고 아버지의 육아 참여가 활발한 나라는 출산율도 높다. 남성의 육아 참여와 출산율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자는 A 씨의 이야기를 지면에 담지 않는 대신 그의 ‘무사 복귀’를 응원하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남성의 육아휴직이 ‘개인적’인 일이 아닌 미래를 준비하는 ‘사회적’인 일로 인식되길, 그래서 육아휴직을 쓰는 남성 소수자들의 커밍아웃이 많아지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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