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미혼모 주홍글씨” 벼랑끝에 선 10대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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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9일 03시 00분


낙태 고발 이후… 산부인과 전전하는 임신 10대들

“자립 어려운데 아이 낳으면
학습기회 뺏기고 빈곤층 전락”
vs
“10대 낙태는 전체 3.6% 불과
사회경제적 이유로 허용 안돼”

경기 부천시 A산부인과 원장은 최근 “의사 선생님, 제발 도와주세요”라며 울먹이는 14세 여학생을 고민 끝에 돌려보냈다. 이 여학생은 술에 취한 채 동네 남학생과 성관계를 가졌는데 덜컥 임신이 되었다. 임신 6주차에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산부인과 7곳을 돌아다녔지만 모두 낙태를 거부했다. 이 여학생은 “기초생활수급자인 엄마와 살고 있고 엄마가 암에 걸려 내가 간호를 해야 한다”며 아이를 키울 형편이 아니라고 매달렸다.

A산부인과 원장은 “제대로 성교육을 받지 못하고 한 번의 실수로 임신한 미성년자에게 성장할 기회조차 뺏는 것이 맞는 건가 싶었다”며 “미혼모라는 짐을 지고 사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힘들지…”라고 말했다.

태아의 생명권이냐, 미성년자의 성장권이냐.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최근 낙태 시술이 의심되는 병원을 고발하면서 낙태를 하기 위해 산부인과를 전전하는 미성년자가 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낙태가 가능한 병원을 묻는 전화가 하루 2, 3통씩 걸려 오고 있다”며 “전에는 이런 전화가 온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 산부인과 인터넷 게시판에는 “병원들이 낙태를 꺼리면서 모험 수당이 붙어 낙태 비용이 2배 비싸졌다”는 고민 글이 올라왔다.

현행 모자보건법상 미성년자 낙태는 불법이다. 하지만 미성년자의 성관계가 광범위하게 번져 있지만 피임 교육 등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 대한산부인과학회지에 지난해 12월 실린 ‘한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성행태 조사’에 따르면 설문 응답에 참여한 13∼18세 중고교생 7만1404명 가운데 성관계 경험률은 전체 5.1%였고 성관계 시 피임을 했다는 대답은 38%뿐이었다. 성관계 경험 여학생의 14%는 임신 경험이 있었고 이 가운데 85%가 임신중절수술을 했다.

10대 미성년자에 국한해 태아의 생명권과 엄마의 선택권의 문제를 들여다보면 낙태 논쟁은 더욱 첨예해진다. 최안나 프로라이프의사회 대변인은 “미성년자 낙태는 전체의 3.6%에 불과하다”며 “성인이든 미성년자이든 사회경제적 이유로 인한 낙태는 기본적으로 반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미성년자에게 아이 낳기를 강요하기보다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혜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임신하면 학교도 다니기 힘든 상황에서 미성년자는 아이가 태어나면 대부분 절대 빈곤층으로 전락한다”며 “낙태를 단속하면 여학생, 특히 부모가 도움을 줄 수 없는 경제적 취약계층 여학생에게 피해가 집중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성년자의 낙태를 막으려면 실효성 있는 피임 교육을 하고 미성년자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혼모 시설인 애란원의 한상순 원장은 “여기 미혼모의 25%가 미성년자로 그만큼 미성년자가 출산 후 자립하기 힘들다”며 “아이를 키우며 학교를 다니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양육비와 검정고시 학습비 등 연 154만 원을 지원하는 청소년 한부모가족 자립지원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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