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가 기획-실행 도맡아… 檢, 청탁 대주주등 11명 기소
회사 열달 버티다 법정관리… 개인 투자자들 피해액 클듯
기업 회계가 투명하도록 감시해야 할 회계사와 변호사들이 코스닥 상장회사 대주주의 수백억 원대 횡령·배임 범죄를 숨기는 범죄에 가담했다 검찰에 덜미가 잡혔다. 외부감사인 공인회계사가 분식회계의 기획에서부터 실행까지 모두 도맡아 처리한 ‘적극적 분식회계’ 사건이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검찰은 설명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부장 전현준)는 회삿돈 120억 원을 빼돌려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자회사에 280억 원을 빌려주고 회수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로 양계가공업체 A사의 전 대주주 이모 씨(47)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15일 밝혔다. 또 이 씨에게서 돈을 받고 재무제표를 허위로 작성해 주는 등 분식회계를 주도한 국내 10위권 회계법인의 전 이사 백모 씨(44) 등 회계사 5명과 허위 법률의견서를 작성한 변호사 1명, 채권자 등 10명을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 씨는 2005년 12월부터 2008년 3월까지 자신이 저지른 400억 원대 횡령·배임 범죄로 회사가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상장폐지될 위기에 처하자 회사장부를 조작해 달라고 회계사에게 돈을 건네면서 청탁을 했다. 백 씨는 청탁과 함께 이 씨에게서 1억1000만 원을 받자 각종 계약서를 위조하는 등의 수법으로 A사의 당기순손실 314억 원을 ‘0’원으로 둔갑시켜 줬다. 당초 ‘의견거절’이라고 적었던 감사보고서도 A사에 더 유리한 ‘한정의견’으로 바꿔줬다. 특히 백 씨 등 회계사들은 감사 대상 회사의 재무제표의 적정성을 객관적으로 감사하고 평가하기는커녕 먼저 분식회계 수법을 만들어 A사 대주주에게 제시하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자신들이 만든 분식회계 방안에 따라 빌린 사채를 회사자금인 것처럼 위장하는 등 분식회계 수법도 총동원했다.
변호사도 분식회계를 숨기는 데 힘을 보탰다. 변호사 김모 씨(41)는 백 씨 등이 회계장부를 조작한 것이 정당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허위 내용의 법률자문 의견서를 작성했다. 이 대가로 이 씨로부터 1000만 원을 받은 김 씨는 “나중에 1억 원을 받기로 한다”는 약속도 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파렴치한 대주주와 부도덕한 전문직 종사자들이 짜고 벌인 분식회계 범죄 덕분에 A사는 10개월간 상장폐지를 피할 수 있었다. 검찰은 이 기간에 코스닥 시장에서 이 회사 주식 1569억 원어치(7억6535만 주)가 거래된 점에 비춰 볼 때 상당수 개인 투자자들이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했다. 결국 A사는 지난해 4월 부실의 실상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상장이 폐지됐고 부도 처리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전현준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장은 “누구보다 공정하고 독립적인 직무수행을 해야 할 위치에 있는 공인회계사와 변호사 가운데 일부가 심각한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음이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다”며 “감사를 맡을 수 있는 회계법인의 자격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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