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음 학기에 미국 간다.” “어머 그래? 잘됐다. 얼마 동안 가는데?” “한 학기. 좀 짧은 것 같지?” “아냐, 그래도 미국이잖아. 어느 학교로 가?”
3학년이 되자 친구들이 하나둘 교환 학생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좋은 경험이 될 것이기에 마땅히 축하할 일이지만 동시에 학생회관에서 혼자 먹는 밥그릇 수가 늘어난다는 서글픈 신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는 시늉 할 처지가 못 된다. 나야말로 그들과 함께 파란만장한 스무 살을 보낸 뒤 첫 후배를 받기도 전에 서둘러 어학연수를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요즘 대부분의 기업에선 ‘대학생 -단’을 뽑는다. 정보통신 금융 패션 정부기관까지 예외 없다. 대학생의 피 끓는 열정과 신선한 아이디어를 늘 갈급해하는 것 같다. 처음엔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경험해보려고 했지만 합격이 그리 쉽지 않았다. 나도 대학생으로서 프로모터 크리에이터 테스터 등의 경력이 몇 번은 있어야겠기에 생각 끝에 일단 다 넣어보기로 하고 여기저기 도전했다. 대외 활동에 열중하다 보면 좋은 학점을 받을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사실은 알지만 대학생이라면 기꺼이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 학점과 대외활동, 유학, 토익점수, 자격증은 이제 더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가 없는 스펙이다.
지난 몇 년간 이번엔 무엇을 해야 할까, 다음번엔 이것을, 어떤 것이 더 괜찮을지 등등 쉼 없이 머리를 굴리며 살아왔다. 얼마 전에 ‘버킷 리스트’라는 영화를 봤다. 가난한 자동차 정비사인 카터가 갑작스레 큰 병을 얻어 입원하는데 대학 신입생 시절 철학 교수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보라고 했던 과제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와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온 재벌 사업가 에드워드가 우연히 같은 병실에 입원한다.
죽을 운명인 둘은 공통점을 발견한다. 자신이 지나온 삶을 정리하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점. 둘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고 전 세계를 돌며 당장 실행에 나선다. 영화의 후반부에 황금빛 석양이 지는 풍경을 뒤로하고 카터가 에드워드에게 했던 대사를 잊을 수 없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영혼이 하늘에 가면 신이 두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 대답에 따라서 천국에 갈지 말지가 정해진다더군.” “그게 뭐였는데?”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자네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었나였어.” 인생의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기 이전에, 대학생으로서 보내는 마지막 한 해의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어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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