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이 안으로 너무 굽은 ‘산재 판정’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19일 03시 00분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의 사소한 상처도 산재 처리
“나랏돈을 후생복지비 취급”… 재해율 위험직종 수준

산업재해(산재)를 판정·보상하는 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 직원인 A 씨는 2008년 4월 직장 체육대회에서 족구를 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진단 병명은 ‘요추(허리) 염좌(인대가 외부 충격 등에 의해서 늘어나거나 일부 찢어지는 것) 및 긴장’. 일반적으로 ‘삐었다’고 말하는 부상이다. 이 사고로 A 씨는 2008년 6∼10월, 5개월 여간 집에서 쉬면서 모두 1610만여 원을 보상받았다. 문제는 1610만여 원 중 치료비는 108만 원에 불과하다는 점. 나머지 1500만여 원은 휴업급여. 휴업급여는 재해로 근무를 못하고 쉴 경우 통상임금의 70%를 보상해주는 것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수술이나 입원도 하지 않은 채 5개월간 치료비가 100만 원이라면 큰 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직원들의 재해 판정에 유난히 관대해 산재기금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8일 한나라당 박대해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에서 제출받은 ‘산재요양 결정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 공단의 2005∼2009년 산업재해율은 연평균 0.7%. 상급기관인 노동부(0.26%)나 같은 산하기관인 고용정보원(0.26%),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0.11%), 한국장애인고용공단(0.34%)에 비해 월등히 높다. 2008년 기준으로 전국 평균 산재율이 0.71%지만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광업(0.86%), 건설업(0.63%) 등까지 모두 평균한 수치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무직종만 비교할 경우 최근 5년간 금융업은 연평균 0.15%, 금융 및 보험 관련 서비스업은 연평균 0.07%에 불과하다.

사무직종인 공단의 산재율이 높은 것은 사소하게 다친 것까지 적극적으로 산재 처리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공단 측이 박 의원실에 제출한 ‘재해 경위’에 따르면 공단의 서울 강남지사에 근무하는 B 씨는 지난해 4월 서류 상자를 옮기던 중 철제 선반에 손가락을 베이자 치료비 3만5000원을 산재로 처리했다.

업무로 인정받고는 있지만 체육대회에서의 부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공단 산재율이 높아진 이유다. 공단 지사에 근무하는 D 씨는 평일인 지난해 5월 체육행사를 겸해 직원들과 소백산 비로봉에 올랐다가 무릎에 통증을 느껴 정밀진단을 받고 78만 원을 보상받았다. 최근 5년간 공단 직원들이 신청한 산재는 모두 78건. 이 중 27건(34.6%)이 체육행사 또는 워크숍에서 발생한 부상이다.

박 의원은 “업무상 큰 사고가 나야 산재 생각을 하는 국민들과 달리 주무 기관인 공단 직원들은 사소한 상처나 운동 중 벌어진 일까지 산재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상급기관인 노동부는 연중 산업재해 줄이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정작 담당 기관이 나랏돈을 후생복지비처럼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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