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마지막 날인 15일. 휴일을 반납한 서울동물원 제1아프리카관 기린 사육사들이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어미 기린 ‘헤라’가 진통을 시작한 지 6시간을 넘어선 오후 3시 반경. 새로 태어날 아기 기린의 오른쪽 앞발이 어미의 몸 밖으로 불쑥 나왔다. 이후로도 출산 과정은 2시간 넘게 계속됐다. 오후 4시 45분에 겨우 머리가 드러났다. 새끼 기린이 어미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시간은 앞발이 보인 지 2시간 15분 후인 오후 5시 45분. 하지만 담당 박석현 사육사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았다. 키 1.5m, 몸무게 40kg. 갓 태어난 새끼 기린의 평균 몸무게(60kg)보다 덩치가 많이 작은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덩치는 작았지만 새끼 기린은 태어난 지 20분 만에 네 발로 건강하게 일어섰다. 오후 8시 이후에는 어미의 젖을 물기 시작하는 등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박 사육사의 표정은 그제야 밝아졌다. 폐쇄회로(CC)TV로 출산 과정을 지켜보던 직원들 사이에서도 환호가 터졌다.
기린 중에서도 순하기로 소문났던 ‘헤라’는 새끼를 낳은 직후 공격적으로 돌변했다. 박 사육사가 새끼의 태막을 벗겨주기 위해 가까이 가자 긴 목을 휘두르며 위협한 것. ‘네킹(necking)’이라고 불리는 이 행동은 기린이 서로 싸우는 방식이다. 박 사육사는 “기린이 새끼를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하는 행동”이라며 “잘못 부딪치면 크게 다칠 수 있어 어미의 성질이 가라앉을 때까지 가까이 가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동물원은 홈페이지(grandpark.seoul.go.kr)에서 새끼 기린의 이름을 공모하는 한편 개원 26주년을 맞는 5월 1일 이 기린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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