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마산진해 통합시’ 명칭이 ‘창원’으로 결정돼 이들 지역이 600여 년 만에 원래 이름으로 ‘한 살림’을 할 것으로 보인다. 통합시 임시청사는 현 창원시청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3, 4년 뒤 입주 예정인 통합시 청사 소재지에 대한 의견 통일이 되지 않아 ‘한 마음’이 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 일제강점기 때 분리
창원시 관계자는 18일 “통합준비위원회가 통합시 명칭을 ‘창원’으로 결정한 것은 3개 시가 옛 지명으로 부활했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밝혔다. 이는 조선 태종 8년인 1408년 7월 ‘의창현(현재 창원)’과 ‘회원현(현재 마산)’을 합쳐 ‘창원부(昌原府)’라는 명칭이 생겨난 지 600여 년 만이다. 지금 진해인 웅신현은 당시 창원부 영현이었다.
창원부는 1415년에 도호부(都護府)로 바뀌었다. 이어 임진왜란 당시 창원 사람들이 합심해 왜군에 항복하지 않고 항쟁한 정신을 높이 사 선조 34년인 1601년 창원대도호부(昌原大都護府)로 승격시켰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이던 1914년 4월 마산을 창원에서 떼어내 ‘마산부’로, 창원대도호부는 ‘창원군’으로, 창원부 웅천현(웅신현)은 ‘진해면’으로 각각 분리되면서 ‘세 가족’이 됐다. 이어 1948년 마산부는 마산시로, 1955년 진해면에서 승격된 진해읍은 진해시로, 창원군은 1980년 창원시로 각각 승격됐다. 박동백 창원문화원장은 “원래 한 뿌리였던 3개 시가 다시 하나로 통합된 것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 통합시 청사 ‘안갯속’
통합준비위원회는 17일 격론 끝에 통합시 청사소재지는 통합시 출범 이후 결정하되 마산종합운동장과 진해 옛 육군대학 터를 공동 1순위로, 창원 39사단 터는 2순위로 결정했다.
당시 마산과 진해를 대표하는 준비위원들은 각각 마산종합운동장과 옛 육군대학 터에 대해 한 치 양보 없이 격론을 벌였다. 명칭과 임시청사를 창원으로 정한 만큼 통합시 청사는 자신들 지역으로 유치하려는 의도다.
마산과 진해지역 주민들은 통합추진 초기부터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와 지역 균형발전을 기대했다. 반면 창원시민들은 “지리적 중심인 창원에 통합시 청사가 들어서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장동화 통합준비위원장은 “청사 소재지는 첫 통합시 의회가 타당성 조사와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쳐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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