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터디]언어영역/함정 피하기5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22일 03시 00분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은 주어진 제시문에서 근거를 찾는 시험이다. 제시문 밖에서 정답의 단서를 찾는 것은 <보기>를 주는 문제 등 비판적 사고의 문제뿐인데, <보기>를 주지 않으면서 외부에서 단서를 찾는 문항 수는 1∼2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능 언어영역에서는 선(先)지식 등에 의한 편견은 절대 피해야 한다.》

이만기 위너스터디 언어영역 강사

수능 언어영역에서 정답의 근거는 반드시 제시문 안에서 찾아야 한다. 비판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문항이라고 해도 절대적인 근거는 제시문 안에 있으며, 온전히 제시문 밖에 있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비문학 제재나 쓰기의 경우, 기존에 알고 있는 지식을 무작정 적용했다간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문학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만약 자신의 상식이 제시문과 다를 땐 제시문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과거 문학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오답을 고를 가능성이 있는 경우(2004학년도 수능 언어영역 중 백석의 ‘고향’에서 출제된 문항)나 최근 실제적 사실이 과학적 이론과 어긋나 오답을 고를 수 있는 경우(2010학년도 수능 과학탐구영역 중 지구과학Ⅰ의 개기일식 문항) 같이 복수정답을 인정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선지식에 의한 편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주어진 문항에서 최선의 정답을 고르는 것이 원칙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실시한 2003학년도 수능 대비 6월 모의평가 문제를 보자.

[예문] 2003학년도 수능 대비 6월 모의평가
『 얼마나 많은 여가 시간을 갖고 인간답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한 사회의 ‘삶의 질’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법정 노동 시간은 주당 44시간으로,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가 주당 40시간인 데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노동 시간 단축 문제를 두고 노동자, 사용자, 정부 간의 이른바 노·사·정 협의가 최근 진행되고 있다.

노동자 측에서는 노동 시간의 양보다 질적 성과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들어 노동 시간의 단축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즉, 노동 시간을 단축하게 되면 늘어난 여가 시간을 통해 자기 계발의 기회를 확대할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획득한 지식과 경험이 업무 수행 능력을 높임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이 제고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장시간의 노동에서 벗어나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한 개인으로서 인간관계 회복에 도움이 됨은 물론, 노동자로서도 재충전의 기회를 충분히 갖게 된다. 이 경우 직장과 일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돼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으며, 잔업이나 특근 등 지난날 장시간의 노동으로 인해 발생했던 직업병과 산업 재해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노동자 측의 주장이다.

반면에 기업 측에서는 법정 노동 시간의 단축이 실제로 노동 시간을 줄이기보다는, 시간 외 일에 대한 초과 임금 지급으로 인건비 부담만 가중시킴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제도를 도입하는 시점에서의 생산 차질과 노동 조건을 둘러싼 노사 마찰 때문에 노동 비용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인건비의 비중이 높고 기술 수준이 낮은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심각한 인력난을 겪을 우려도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기업들이 저임금의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외국으로 나가거나 기술 집약적인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고, 성급한 노동 시간의 단축으로 야기될 노사 갈등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제도를 점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사용자 측은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사 양측의 대립을 조정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정부는 노동 시간의 단축이 초래할 사회·경제적 파급 효과를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실업 문제의 해소를 노동 시간 단축의 가장 긍정적인 효과로 기대하고 있다.

노동 시간이 단축되면 일자리가 늘어나 고용 창출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한 주당 노동 시간이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어든다는 것은 결국 토요일 휴무에 의한 주 5일제 근무를 의미하기 때문에, 여가·문화·교육 관련 산업이 활성화됨으로써 고용이 창출되고 경기가 부양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정부는 노동 시간 단축으로 인해 ㉠사회 집단이나 계층 간 갈등이 유발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 결과 사회적 단절이 확산되면 국민 통합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

이 글에서는 ‘노동 시간 단축’을 중심으로 노동자 측과 기업 측의 입장을 살펴본 뒤 ‘노동 시간 단축’으로 야기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제시한다. 여기서 출제된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지문의 내용이나 논리적인 흐름에 근거해 판단할지를 평가하는 문제 유형이다. 이 경우, 자신의 생각만으로 답을 찾아서는 안 된다. 답지의 내용이 일반적으로 옳더라도 지문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에 근거해 각각의 답지를 꼼꼼하게 검토해야 함정에 빠지지 않고 정답을 찾는다.

『 9. ㉠의 예에 해당하는 것은?
① 노동 시간 단축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농어민의 불만이 증폭된다.
② 관광객 수의 증가에 따라 여가 관련 기업들 간의 경쟁이 심화된다.
③ 관광지의 환경이 파괴되어 기업과 환경 단체 사이의 대립이 늘어난다.
④ 주 5일 근무제를 시행하지 못하는 영세 기업 노동자의 박탈감이 커진다.
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어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갈등이 심화된다. 』

[풀이] ㉠은 노동 시간의 단축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해당한다. 즉, 정부에서 노동 시간의 단축을 법제화해 시행하더라도 사정상 이를 시행할 수 없거나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회 집단이나 계층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①번은 ㉠의 예에 해당할 것 같지만, 이는 법정 노동시간의 적용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 정답은 ④번.

이 문제의 정답률은 56.17%, 상위 50% 학생의 정답률도 67.25%에 머물렀다. 오답 가운데 ①번에 11.02%, ⑤번에 23.02%가 반응을 보였다. 두 오답지는 모두 ‘사회 집단이나 계층 간 갈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①번은 제시문에서 다루는 ‘주 5일 근무제’와 관련이 없고, ⑤번은 제시문에서 몇 단계를 더 나아가야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는 내용이다. 이렇게 제시문에 의하지 않고 자신이 아는 배경지식으로 문제를 풀면 함정에 빠지기 쉽다.

2003학년도 수능 대비 9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모의평가 문제를 보자. 앞선 함정 유형이 나타난 쓰기 문제이다.

[예문] 2003학년도 수능 대비 9월 모의평가
『 8.<보기>는 ‘여성 인력 활용의 필요성’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위해 수집한 자료들이다. 이를 활용하여 전개한 논지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 <보 기>
㉠ 중견 여성 직원의 인터뷰에서: “나는 후배 여성 사원들에게 튀지 말고 원만하게 일을 처리하라는 충고를 많이 합니다.”
㉡ 인터넷 게시판에서: 지금은 사관학교에 여성이 수석으로 입학하는 시대다. 전투기 조종사나 장군이 된 여성도 있다. 여성들이여, 기죽지 마라! 우리는 뭐든 잘할 수 있다!
㉢ 정부 통계 자료에서: 」


① ㉠의 ‘충고’를 비판하면서, 여성 스스로 소극적 자세에서 탈피하여 능력을 발휘하겠다는 태도를 갖추어야 함을 역설한다.
② ㉡의 내용을 활용하여, 여성의 장점을 살려 여성에게 특화된 직업을 새로 개발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③ ㉢의 내용을 활용하여,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가 남성에 비해 미흡함을 지적한다.
④ ㉠과 ㉡을 대비하여, 여성들 사이에서도 직업 활동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있음을 밝힌다.
⑤ ㉡의 예에도 불구하고, ㉢에서 보듯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에 큰 변화가 없었음을 밝힌다. 』

[풀이] 이 문제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정답에서 진술하는 내용이 대부분 맞고 특정 단어로 인해 틀리게 된 사실을 학생이 쉽게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글의 전체적인 논지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자료를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약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에서는 ‘사관학교에 여성이 수석으로 입학하는 시대’라고 하면서 여성이 ‘전투기 조종사’나 ‘장군’이 된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즉, 여성들도 ‘남성들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직업’에 종사하므로 자신감을 갖자는 내용의 글이다. 그러나 ②에서는 ‘여성의 장점’을 살려 ‘여성에게 특화된 직업을 새로 개발’하자는 내용이므로 ㉡을 바탕으로 한 논지 전개로 적절하지 않다. 정답은 ②번.

이 문제의 정답률은 47.73%였는데, 오답지인 ④번과 ⑤번에 각각 20.29%, 17.45%가 반응을 보였다. ④번에서 ㉠은 어느 중견 여성 직원의 의견으로, 직장에서 여성은 ‘튀어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 ㉡은 인터넷 게시판의 글로, 여성들도 무엇이든 잘 할 수 있다는 의견의 글이다. 그러므로 ㉠과 ㉡을 대비해 여성들 사이에서도 직업 활동에 대한 태도 차이가 있음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다. ⑤번에서 ㉡은 인터넷 게시판의 글로, 여성들도 무엇이든 잘 하므로 적극적인 태도를 갖자는 내용이다. 그러나 ㉢의 표를 보자. 해가 갈수록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늘어나지만, 여전히 남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에 비하면 그 참여가 미흡하다. 그러므로 ㉡의 예에도 ㉢에서 보듯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에 큰 변화가 없었음을 밝히는 것이 적절하다.

▶지난 기사와 자세한 설명은 ezstud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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