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반장-회장 한번 안하고 국제중-특목고 갈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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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3일 03시 00분


엄마들, 자녀 경력만들기 개학전부터 ‘물밑경쟁’“입학사정관 전형 때 리더십 입증할 강력한 무기”
1주일에 100만 원 넘는 리더십캠프-웅변학원에 줄이어

《곧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아들을 둔 학부모 박모 씨(41·서울 서초구)는 다가오는 1학기에 아들을 전교 학생회장으로 만들기 위해 요즘 분주하다. 5학년 2학기 때 아들은 반장에 당선됐지만,
5학년 때만 할 수 있는 전교 부회장 지원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후보자 명단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안타까웠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철두철미한 준비를 시작한 박 씨. 전교회장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학급반장이 되는 것이 우선이다. 3월 첫째 혹은 둘째 주에 치러지는 반장선거. 그리고 그 일주일 뒤가 회장 선거다.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은 시간. 박 씨는 먼저 아들이 배치된 학급에 눈에 띄는 반장후보가 있는지 탐색했다. 지난 학년에 반 임원을 했거나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학생이 이에 해당한다.
아들을 제외한 남학생 A 군과 여학생 두 명이 ‘후보’로 추려졌다. 낯선 아이들과 담임선생님을 만나게 되는 1학기는 반장후보로 나서는 걸 A 군이 부담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 씨. 그는 A 군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2학기 때 아들을 밀어줄 테니 1학기 때는 우리 아들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아들의 반장 당선이 확실하다고 믿은 박 씨는 벌써 전교회장 선거를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학부모 인맥을 총동원해 저학년 표 공략에 나선 것이다. 평소 알고 지냈던 엄마들에게 “우리 아들이 이번에 회장선거에 출마하면 아이에게 ○○○ 찍으라고 이야기 좀 해줘”라고 부탁한다. 박 씨는 “국제중이나 특목고, 대학에 지원할 때까지 아이의 리더십을 보여줄 방법으로 전교회장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면서 “아무래도 눈에 띄기 때문에 입시를 앞두고 교사, 교장의 추천을 받을 때도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목고 등 일부 고교와 대학 입시에 입학사정관전형이 확대됨에 따라 자녀의 스펙을 하나라도 더 추가하려는 학부모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자녀의 ‘리더십’을 증명할 강력한 수단인 ‘반장’, ‘전교 학생 회장’은 이런 학부모들로선 놓칠 수 없는 핵심요소가 아닐 수 없다. 전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가 입학사정관전형을 시행 중인 전국 47개 대학의 전형요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들 대학의 본인 혹은 교사 추천서 질의항목에서 ‘창의력’ ‘봉사정신’과 함께 ‘리더십’을 평가하는 항목이 매우 많은 것으로 나타난 것.

이런 흐름에 따라 교육열이 높은 서울 강남 등지에선 반장과 전교회장 선거의 경쟁률이 해마다 높아지는 추세다.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선 전체 30명인 학급의 반장 후보로 15명이 출마하는 일도 벌어졌고, 과거 3 대 1가량이던 전교 회장 경쟁률이 최근 7 대 1이나 8 대 1까지 치솟는 학교도 비일비재하다.

예비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주부 오모 씨(43·경기 성남시 분당구)는 지난 겨울방학에 아들을 한 사설업체가 운영하는 ‘리더십 캠프’에 보냈다. 아들은 초등학교 때 반장 혹은 부반장을 놓친 적이 없지만 전교 임원 선거에선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아들의 탈락 원인을 찾아 이를 해결함으로써 중학교 때는 아들을 전교회장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일주일 동안의 캠프 비용은 총 110만 원. 적잖은 부담이었다. 하지만 아들에게 캠프에서 들은 ‘전체회의 진행법’ ‘감동적인 스피치 연습’ ‘리더십 집중 훈련’ 같은 강의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만족했다. 오 씨는 “초등학교 졸업식을 보니 교육감상, 인재상 등 큰 상은 어김없이 전교회장과 부회장의 몫이었다”면서 “아들이 수학 과학과 관련된 교내외 대회에 나가 전교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전교회장이 아니어서 이런 상을 받지 못해 속상했다”고 말했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면 전략적으로 전교회장 선거 준비를 시킬 계획이라는 오 씨. 1학년 때는 반장, 2학년 때 전교부회장, 3학년 1학기 전교회장을 노리고 있다.

반장, 회장 선거 열풍에 따라 웅변·스피치학원도 인기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스피치학원에는 전교 학생회장에 출마하려는 초·중생을 둔 학부모의 문의가 신학기 직전까지 몰린다. 학생들은 개인레슨을 통해 연설문 원고 작성, 공약 짜기, 효과적인 스피치와 선거 퍼포먼스에 대한 ‘비법’을 익힌다. 이 학원 원장은 “리더십이 있어도 표현을 잘 못해서 회장이 될 수 없었던 학생들에게 스피치 기술부터 대화법, 리더십, 인간관계 전반에 대해 지도해 회장으로 만든다”면서 “스피치를 배우다 자연스럽게 자신감과 리더가 되고 싶은 의지와 책임감이 생겨 회장에 나가는 경우도 많지만 입학사정관전형을 노리고 회장이 되기 위해 오는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초등 고학년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학습사이트에서는 ‘초등학생 리더십 키우기 프로젝트’가 등장했다. 이 사이트의 ‘임원선거 A to Z’에서는 초등학교 임원이 되기 위한 마음가짐, 말, 행동, 당선 노하우가 담겨 있다. 지난해 학급 반장을 지낸 사이트 회원의 ‘반장 체험기’를 동영상으로 제작해 제공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반장 선거에 노하우와 전략, 열성 엄마들의 노력만 있고 진짜 리더십은 찾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학급을 이끌거나 학교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할 만한 ‘일꾼’이 아니라 단순히 말 잘하고 인기 있는 학생이 선출되기도 한다는 것. 엄마의 인맥이 동원되거나 사전 선거운동, 로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적잖은 돈이 투자되기도 한다.

예비 초등 5, 6학년 두 딸을 둔 주부 조모 씨(38·서울 양천구 목동)는 “요즘 아이들은 예전처럼 공부 잘하고 모범적인 아이가 아닌, 엄마들이 간식을 많이 ‘쏘는’ 아이를 반장으로 뽑는다. 6학년이 되는 첫째딸을 이번에 반장으로 만들기 위해 5학년 때부터 햄버거, 떡 같은 간식을 여러 번 샀다”고 전하면서 “엄마들은 정신적 경제적으로 힘들더라도 아이가 반장, 회장이 되면 여러모로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경력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교 학생회장 선거운동이 과열되자 일부 학교에서는 학급반장들이 전교회장 후보로 나오는 기존 규칙을 깨고 전교회장을 학급 반장보다 먼저 선출하기도 한다. 전교회장 선거일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고 불시에 회장 선거를 치르는 학교도 생겼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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