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앵무새처럼 말하고 또 말하고”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23일 03시 00분


영어달인 두 학생의 말하기 전략

《학부모 박모 씨(40·서울 송파구)는 영어말하기가 좀처럼 늘지 않는 초등 5학년 아들 때문에 고민이 많다. 아이는 2학년 때부터 집에서 영어테이프를 매일 듣고 체크하는 학습지로 공부했다. 4학년 때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원어민 강사와 개인교습을 했다. 최근 한 어학원의 레벨테스트를 받은 아들. 문법·어휘·독해에선 중학 1학년 수준의 점수를 받았지만 말하기는 초등 3학년 수준이라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박 씨는 “영어테이프를 틀어놓고 다른 생각을 하는 건지, 원어민 강사와는 대체 무슨 공부를 한 건지 모르겠다”면서 “들인 시간과 비용에 비해 말하기는 좀처럼 실력이 향상되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영어 CD를 반복해서 듣고 몇 년 동안 학원에 다녀도 유창하게 영어로 말할 줄 아는 학생이 흔치 않다. 학부모들은 답답하다. 대체 왜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공부해도 어떤 학생은 유창하게 영어로 말하는 반면 내 아이는 간단한 문장을 외워 말하는 수준에 그치는 걸까.

외국에서 살다온 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각종 영어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서울 성내초교 3학년 안새빈 양(10)과 청심국제중 1학년 이하윤 양(14)을 만나 그들의 영어말하기 비결을 들어봤다. 이들의 말하기 비결은 공통적인 세 가지로 압축됐다.

○ 스펀지처럼 영어를 흡수하라!
이 양은 초등 3학년 때 교내 영어스피치대회에서 상급 학년 학생들을 제치고 전체 대상을 받았다. 다른 학생들이 초등 입학 전부터 영어유치원에 다니고 영어학원에서 공부할 때까지 이 양은 학원에 다녀본 적이 없다. 이 양의 어머니는 이 양을 여러 학원에 보내는 대신 가정에서 영어를 자연스럽게 공부하면서 영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이 양은 영어 게임을 하거나 영어 애니메이션을 보는 등 놀면서 영어와 친해졌다.

이 양이 집에서 주로 했던 영어게임은 ‘아이 스파이(I Spy)’였다. 아이 스파이는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단어에 해당되는 이미지를 찾으며 영어 단어를 공부하는 게임. 이 양은 “놀면서도 단어실력이 크게 늘었고 쓸 수 있는 단어가 많아지자 영어말하기에도 자신감이 붙었다”고 말했다.

어릴 때 즐겨본 애니메이션은 ‘매직스쿨버스(The Magic School Bus)’였다. 등장인물인 프리즐 선생님과 아이들이 마법의 스쿨버스를 타고 우주, 사람의 몸속, 벌집, 화산 등으로 떠나는 내용을 담은 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 양은 영어에 대한 흥미를 높였다. 이 양은 매직스쿨버스에 나오는 대사를 통째로 외우는 습관이 생겼다. 이때 외운 영어문장은 상황에 따라 단어나 형식을 조금씩 바꿔 영어말하기대회 대본으로 썼다. 예를 들어 반 학생들이 “As Ms Frizzle would say, ‘Never say never.’”라고 말하는 부분을 주어와 인용구를 바꿔 말하기 대회 때 “my grandmother in Jinju would say, ‘Your grandmother used to∼’”라는 문장으로 만드는 식이다.

○ 앵무새처럼 원어민을 따라 말하라!

“I think Martin Luther King Jr. was great because he stopped racism. So he could get the Nobel Peace Prize and now there is a black president….”

최근 YBM/Si-sa와 시사 ECC가 주최한 ‘The Best Bookworm UCC Contest’에 안 양이 출품한 손수제작물(UCC) 동영상인 ‘Life of Martin Luther King Jr.(마틴 루서 킹 목사의 삶)’ 중 일부다. 안 양의 영어말하기는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해외파’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을 정도로 발음과 억양이 탁월했다. 안 양은 외국에 나가본 적은 없지만 영어 CD를 들으며 원어민과 똑같이 말할 때까지 앵무새처럼 따라했다. 어려운 표현이 나오더라도 바로 의미를 찾기 전에 따라 말하는 습관을 들였다. 막히는 표현이나 단어가 문맥상 중요한 경우에는 인터넷에서 검색한 후 정확한 발음을 찾아 연습했다.

‘슈렉’ ‘업’ 등 영어 애니메이션을 볼 때는 절대 한국어로 더빙된 것을 보지 않았다. 잘 들리지 않는 부분은 알아들을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 들은 후에 자막을 봤다. 이렇게 연습한 영어문장은 평상시 동생과 대화할 때 응용해서 연습했다. 그러자 언제부턴가 일상생활에서 영화 속과 비슷한 상황이 되면 영화에서 들었던 대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안 양은 “영화 속 혹은 영어 CD 속 그들의 발음과 똑같이 말하고 제스처와 표정까지 따라한 것이 영어말하기의 비결인 것 같다”면서 “내가 영어로 말한 것을 녹음해서 원어민의 발음과 비교해보는 과정에선 어색한 부분을 고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대회를 통해 두려움을 없애라!
두 학생은 영어말하기 대회에 적극적으로 출전해 영어로 말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대회에 참가해 상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연설문을 작성하고 연습을 하면서 영어말하기 실력이 향상됐다는 점. 안 양은 지난해 11월 세계예능교류협회가 주최한 ‘대한민국 학생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아리랑’을 주제로 한국 전통음악의 구슬픈 가락에 대해 연설해 금상을 받았다. 안 양은 대회 원고를 작성할 때 문법이나 단어를 개의치 않고 일단 스스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썼고, 이후에 교사나 부모의 도움으로 내용을 보완했다. 내성적인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 거실에서 책상을 연단 삼아 실제 대회처럼 말하는 연습을 했다.

이 양은 초등 4, 5학년 때 낙농진흥회에서 주최한 ‘아이러브밀크 영어말하기 대회’에 출전해 각각 금상과 은상을 받았다. 대회에 출전하기 전엔 마틴 루서 킹 목사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연설 시 어떤 제스처를 취하는지, 강조해야 할 부분에는 어떤 억양, 톤으로 말하는지 연구해 자신의 연설에 적용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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